“인정상 넘어가는 풍토, 표절 만연 원인”
“인정상 넘어가는 풍토, 표절 만연 원인”
  • 법보신문
  • 승인 2007.06.25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계 표절 사례 유형 분석

표절시비 땐 ‘포교 목적’ 핑계대며 정당화
전법-공덕 수준 넘은 명백한 위법 행위

표절의 대표적인 사례들

원본

표절본 

운허 스님 역 화엄경 입법계품 9장
그때 선재동자는 큰 지혜의 광명이 비치어 마음이 열리며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성품을 보고, 모든 음성을 아는 다라니문을 얻었으며,…(하략)
M스님 역 화엄경 입법계품 9장
그때 선재동자는 큰 지혜의 광명이 비치어 마음이 열리며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성품을 보고, 모든 음성을 다는 다라니문을 얻었으며,…(하략)
조계종출판사 불교입문 p. 36
1) 사찰의 의미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도량이자 불법佛法을 널리 펴서 중생을 제도하는…
B불교대학 ‘불교의 첫걸음’ p. 37
1) 사찰의 의미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 도량이자 불법(佛法)을 널리 펴서 중생을 제도하는…
K씨 석사논문 머리말
깨달음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불교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교학이론과 수행방법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략)
J스님의 저술 중 두 번째 장 도입부분
깨달음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불교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교학이론과 수행방법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략) 

# 사례 1
1998년 정토신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받은 K씨는 최근 인터넷 서점에서 모 종단 총무원장과 종정이 공동으로 집필한 정토신앙 관련 책을 구입했다. 책을 펼쳐든 순간 K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석사논문이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책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각주에도 참고문헌에도 자신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그 책의 다른 내용들 또한 정토신앙과 관련된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K씨는 그 책을 출간한 출판사와 J종단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 사례 2
지난 해 A교수는 B학회에 논문을 제출했지만 탈락했다. B학회측이 관련 전공자인 C교수에게 심사를 의뢰한 결과 심사논문이 C교수의 논문과 상당부분 내용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 논문 제출자가 심사위원의 논문을 베낀 경우라 표절 사실이 비교적 일찍 밝혀졌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학회지에 실린 후 표절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B학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처럼 표절로 인해 논문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한해에도 수 건 씩 발생하고 있다.

# 사례 3
D출판사 C 부장은 대강백으로 유명한 M스님의 경전 번역서가 자사에서 출판된 책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D출판사는 그 스님을 고발조치하지 않았다. 조계종의 중진스님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M스님을 고발할 경우 불교계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스님이 돈을 벌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불자들에게 경전 한 줄이라도 더 읽게 하려고 ‘전법을 위해’ 책을 베낀 행위를 범죄행위로 치부하는 게 우리 절집 분위기하고는 좀 거리가 멀지 않느냐”는 것이 C부장의 설명이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는 모두 불교계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이런 정도의 표절 시비는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들이다. 최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수석,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등 학자들의 논문 표절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최근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는 ‘논문 표절 심사여부 조항’을 학회지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불교계의 경우 표절 문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하다. 불교계 내에서는 ‘전법이 공덕’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표절이 명백한 경우에도 ‘인정상’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경전 번역물의 표절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경전의 인용 내지 게재는 그동안 한번도 문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묵인돼왔다. 인터넷 불교관련 사이트들도 경전이나 경구들을 무단 게재 및 유포하는 것을 포교의 방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불교계 원로교수들이 과거에 발간한 개설서 중에는 외국 학자의 불교학 개론을 그대로 번역해 자신의 저술인 것처럼 출판한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외국논문이나 서적을 번역 및 무단 게재하는 것은 명백한 표절에 해당된다. 더구나 그것이 원저자의 표기 없이 자신의 저서로 명시했을 시에는 범죄의 시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불교교양대학에서 사용되는 교재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B불교대학에서 사용되는 교재는 조계종출판사에서 발간한 『불교입문』 내용을 그대로 발췌했으며 다른 내용들 또한 다른 불교대학 교재들을 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비단 B불교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교대학에서 직접 만든 교양서적이나 강사들이 사용하는 교재들 중 상당수가 여러 학자들의 개설서를 여기저기 발췌해 만든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교계에서 표절 시비가 발생하는 경우 표절 당사자들의 해명은 대부분 ‘전법’을 목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비매품이나 법공양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라 해도 필자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혹은 필자의 동의 없이 게재된 글은 사실상 불법 유포에 해당된다. 불법(佛法)을 위해 불법(不法)을 저지르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계 출판시장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에 이 같은 표절 행위 중 대부분이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한 악의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법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걸면 베끼기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일 수밖에 없다. 표절은 엄밀하게 말해서 지적 재산권을 강탈한 도둑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