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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의 詩로 읽는 불교] 15. 사성제와 팔정도①-신라 향가 ‘풍요’

기자명 법보신문

고단한 민초의 삶엔 설움도 공덕

아무리 부자라도 고통은 있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부족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그리 고통 속에 지내다 결국 죽을 것을 생각하면 서럽다. 나도 서럽고 너도 서럽다. 우리도 서럽고 천여년 전 신라인들도 그 서러움을 느끼고 그를 벗어날 길을 모색하였다.

<사진설명>‘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웃는 수막새’는 경주 영묘사터에서 출토됐다. 영묘사는 공덕을 지어 극락에 왕생하길 발원한 수많은 백성들의 노동으로 완성됐다.

오다 오다 오다/오다 설움 많아라/설움 많은 우리네여/공덕 닦으러 오다

향가 중 ‘풍요’다. 신라 선덕여왕 때 양지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재주가 많고 덕이 많아 지금 경주 두두리들 자리에 영묘사를 짓고자 장육존상을 모시러 하니 그곳의 양인들이 서로 다투어 진흙을 나르며 이 노래를 불렀다.

‘오다 오다 오다’ 두두리의 양인들은 영묘사에 부역하러 오면서 그 오는 행위를 반복하여 내지르고 있다. 반복은 양인들에게 익숙한 민요의 리듬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부역을 하면서 노동요로 불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면에서 보면 반복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이 북받칠 때 나오는 표현이다. 다음 구를 보면 서럽다고 하였다. 왜 서러웠을까?

‘오다 오다 공덕 닦으러 오다’

자기를 포함해서 삼라만상이 무상(無常)하며 다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 때 인간은 서러움을 느낀다. 꽃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꽃이 아님을 알았을 때, 지금 본 꽃이 다시는 지금의 모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서러움이다. 비단 인간 앞에 펼쳐져 있는 사물만이 아니다. 그 사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무상한 존재다. 인간 존재 또한 홀로 존재하지도, 밖에서 바라본 것과 안에서 드러난 것이 같지 않으며, 영원히 살거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이란 없다. 서러움이란 이런 자기 존재를 들여다봤기에 가능한 의식이다. 이 노래에서 ‘서럽더라’의 진술 또한, 당시 양인들이 영묘사에 와서 자기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존재가 무상함을 인식하고서 서럽다고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서러움은 나의 서러움만은 아니었다. 승구에서 ‘우리네여’라고 외치고 있다. 나 혼자만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러운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럽다면 서러움은 존재론적 범주를 넘어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범주를 갖는다. ‘풍요’가 단순히 신앙의 노래가 아님은 ‘우리네여’란 언술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여기서 ‘오는 것’은 현실이며 현실에서 빚어지는 집(集)이다. 이 집에는 삶의 보편적 고통에 더해 영묘사 장육을 조성하는 노동에 따른 특별한 고통이 더해진다.

장육 부처상을 다시 도금하거나 새로 만드는데 쌀 2만3천7백석을 비용으로 썼다고 한다. 그만한 비용이면 다시 도금하는 비용으로는 과다하다. 새로 만든 비용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중 1/3만 인건비로 잡아도 1인이 1일 6홉씩 먹는다고 치고 연인원 130,000명이 동원된 셈이다. 청제비에 의하면 청제를 중립하는데 1만4천8백여인을 동원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비나 남산 신성비에 의하면, 이런 일을 하는데 대개 그 지방의 촌민(서라벌의 경우 里단위)을 중심으로 대개 농한기인 2월에 동원하였고, 모자랄 경우 전국적인 규모의 동원을 했다. 그렇다면 영묘사의 장육존상을 조영하는데 천여 명의 양인들이 주로 농한기인 한겨울에 100여일 이상 부역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구나 영묘사는 큰 연못을 메워 지은 절이다. 연못을 어느 정도 메우고 촌민들이 들 만한 막대기 모양의 통나무로 땅을 다지고 다시 흙을 쌓고 다지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리고는 무거운 장육존상을 먼저 배치하고 그 위에 절을 짓는 것이 상례이다. 장육존상을 조성하는 데는 흙을 그리 오랜 동안 나를 일이 없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장육존상을 조영하는 일뿐만 아니라 영묘사 짓기 전에 연못을 메우면서 부른 노래이다. 이런 일에는 관례대로 인근의 리나 촌의 양인들을 동원했다. 그렇다면 왕이 거둥하여 군대를 사열할 정도로 큰 대사찰을, 그것도 본래 큰 연못이었던 곳을 흙으로 메우고 이를 다지고 절을 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겨울에도 백일 이상 부역

설화에서는 ‘다투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이들의 행위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자발심이 끝까지 이어졌을까? 처음엔 그럴 수 있겠으나 아무리 불심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수백 일에 걸쳐 연못을 메우고 다지며 대사찰과 장육존상을 조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두두리의 양인의 남녀들이 일을 하러 오는 것은 정녕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신분상 이 일을 벗어날 길이 없기에 ‘오는 행위’, 즉 영묘사를 짓고 장육존상을 조영하는 일은 신분의 속박에서 오는 서러움이요, 노동의 고통에서 오는 서러움이다. 또 장육존상을 조영하는 일이 한 개인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주변의 양인들 모두가 집단적으로 행한 것이므로 그것은 개인의 서러움에서 집단의 서러움으로 확대된다. 단지 양인이라는 이유로 한겨울에 칼바람을 맞으며 흙을 나르고 다지고 다시 흙을 나르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신분 때문에 겪는 비애는?

그러나 인간은 현실을 현실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기와 불안에 있는 현실을 자기, 또는 집단의 의지나 감성에 맞게 변용하여 세계와의 조화를 모색하고 결국 삶의 평형을 찾고자 한다.

극락왕생 발원으로 승화

결구에 오면 이와 같은 현실은 거울처럼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무지개를 만들 듯 굴절되고 있다. 결구에서도 ‘오다’는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오다’는 앞의 ‘오다’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래의 형식만을 따지면 결구의 마지막을 장식하여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고 있으나, 잘 보면 앞의 ‘오다’가 부역을 하러 오는 것이라면 뒤의 ‘오다’는 ‘닦으러’오는 것이다. 즉 결구의 오는 행위의 목적은 공덕(功德)을 닦기 위해서다. ‘공덕’이란 Guna(求那), 곧 내세 또는 현세의 복락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착한 일을 많이 쌓는 것을 뜻한다. 앞의 ‘오다’가 서러움을 낳는 ‘오다’라면 결구의 ‘오다’는 공덕을 낳는 ‘오다’이다.

장육존상 조영이란 현실은 공덕을 닦는 방편으로 바뀐다. 양지 스님의 덕이 하도 높아 당시 양인들은 부역의 고통을 공덕의 길로 알고 훗날 다투어 진흙을 날랐다고 표현할 정도로 부처님을 모시는데, 신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대사찰을 조영하는 데 몸과 마음을 바쳤던 것이다. 더불어 풍요가 노동요이니 노동요는 그 자체로 노동의 고통을 더는 구실을 한다. 노래의 기능으로든 내용으로든 두두리의 양인들은 풍요를 부르면서 두두리의 연못을 메우고 영묘사를 짓고 장육존상을 조성하면서 부역과 신분, 그리고 존재론적 인식에서 오는 고통을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공덕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결국 고통받고 서러움 느끼며 사는 삶이 바로 공덕의 길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 터만 남은 영묘사! 언뜻 무상감이 스치지만, 경주 두두리의 양인들이 고통을 공덕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는 남아,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무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만나게 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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