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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마음이 열고 닫히나

기자명 법보신문

육체 고와도 마음작용 없으면 살덩어리
혜안국사처럼 마음 잘 열고 닫음이 관건

사람의 존재가 너와 남이 있어서 형성되듯이, 모든사물의 존재는 서로의 대칭 속에서 인식되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혼돈인 무극의 상황에서 분화의 운동이 시작되는 태극으로 진화하면서 음양이라는 어둠과 밝음의 두 갈래로 나뉘에 물질의 생성이 시작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사물 존재의 대칭적 구조인 것이다.

나라는 개체의 존재가 인식되려면 너라는 대칭이 있어야 되면서, 나의 개체 하나만을 인식하려 해도 대칭적 구조를 외면하고는 설명될 수가 없다. 육체의 살덩이만으로도 나를 인식할 수 있지만, 인식한다는 이 작용이 없이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으니 인식이라는 이 작용이 결국은 육체의 살덩이와 맞서게 된다. 이럴 때 육체와 맞서는 인식 작용을 무어라 하나, 우리는 이것을 정신이니 마음이니 하여 육체와 대립시켜 설명하려 한다.

육체의 몸이 아무리 풍성하고 아름다워도 인식의 주체인 정신이나 마음 작용이 없으면 한낮 살덩이에 불과하니, 보이지도 않는 정신이나 마음을 더 귀하게 여기면서 육체의 주인으로 삼게 된다. 그러기에 사람이 사람됨의 바탕을 가르치려면 마음 작용의 조종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고심하게 된다. 기실 이 고심이란 말도 마음이 괴롭도록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종교적 신봉이든 윤리적 준칙이든, 그 출발은 마음을 다잡는 방법의 길잡이인 셈이다. 그래서 이 마음을 정의하려는 노력이 바로 가르침의 첫 단추가 되면서 수다스러운 설명이 동반된 것이다. 유가 경전에서 마음을 정의할 때 “비고 영특하여 어둡지 않고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어 온갖 사물에 대응한다” 하거나, 불가에서 “마음(心) 생각(意) 알음알이(識)의 다른 이름으로 설명되는 같은 물체”라 하거나, 결국은 사물 인식의 주체라는 말이 된다.

인식의 아름알이가 있어야 사물존재의 실체가 있게 되니, 순자(荀子)가 말한 “마음은 형상의 군주이다[心者 形之君]”라 한 것도 바른 지적이다. 이런 이론을 종합하여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압축하여 ‘생각이 마음이다’ 라고 한다면, ‘마음을 바로 가져라’ 함이 ‘생각을 곱게 써라’ 하는 말과 동질적으로 이해해도 될 것인가.

마음을 곱게 쓰려면 순수한 마음의 본체를 꾸밈 없이 작용해야 할 것이고, 꾸밈 없이 작용하려면 있는 그대로를 들어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흔히 하는 말이 ‘마음을 열어라’ 이다. 그런데 이 말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열어 놓고 조종할 수 없으면 이 마음이 어디로 운행하는지 알지 못하게 되어 놓쳐버리고 말거나 닫히지 않는 문이 되어 버리면, 육체의 살덩이가 어디로 구를지를 모른다. 반면 열어놓은 마음을 잘 조절하면 육체의 움직임이 어떠하던 대상의 물체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대상의 물체에 이끌림 없이 열린 마음의 실화를 하나 소개해 보자.

오조 홍인대사의 법사인 숭악산 혜안(慧安)국사가 신수(神秀)대사와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부름을 받고 궁중으로 불려 들여졌다. 무후는 국사를 시험하려고 목욕의 공양을 들인다는 명목으로 국사에게 목욕물을 제공하고, 궁녀를 시켜 등을 밀어드리게 하였다. 국사는 태연히 이 공양을 수용하면서도 미동도 없으니 무후가 감탄하여, “물에 들어서야 비로소 큰 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였다.

혜안국사는 마음을 열었다 해야 하나 마음을 닫았다 해야 하나. 무후의 부름을 받아 욕조에 든 것은 분명 마음을 연것이지만, 궁녀의 손길에도 미동도 없었음은 분명 마음을 닫은 것이니, 마음이 열렸다 해야 하나 마음을 닫았다 해야 하나. 형체도 없는 것이 마음이니 열리고 닫힘이 어디에 있나. 여닫는 돌저귀도 없이 매단 풀짚 사립문처럼 바람에 자재로이 열리고 닫히는 마음이 강철 자물쇠로 닫는 철문보다 낫구나.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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