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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가 들려주는 자연의 이치

기자명 법보신문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청어람미디어

알래스카의 가을은 무스(moose, 사슴과 동물)의 번식기입니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무리를 거느리고 사는데 암컷이 수컷을 받아들이는 때는 번식기 끝 무렵의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합니다. 수컷은 교미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수컷들을 물리쳐야 하고 또 많은 암컷들과 짧은 시간에 힘겹게 번식의 사명을 치르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므로 이 시기에만 체중의 약 20퍼센트를 잃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 번식에 성공하고 살아남으니 과연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자손을 남긴다는 자연의 이치 앞에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새틀라이트 무스’라는 녀석이 있다고 합니다. 평소 너무 약해서 싸움 상대도 되지 못하는데 언제나 암컷들 주변을 빙빙 돌다가 수컷 두 마리가 영역을 놓고 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사이에 슬쩍 암컷 무리로 들어와 교미를 해버린 뒤 영역을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약육강식이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새틀라이트 무스가 보여주는 절묘한 생존의 법칙을 보자니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하며 자연을 규정짓던 말들이 어쩌면 인위적이고 현학적이기까지 한 말장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떤 중학생 남자아이가 어느 날 내게 물었습니다.

“산이나 바다 같은 그런 ‘자연’이랑 ‘자연스럽게’라고 할 때의 ‘자연’은 말이 똑같아요. 정말 이 두 ‘자연’은 같은 건가요?”

같은 말이라는 나의 대답에 신기해하는 녀석을 바라보자니 우리가 자연을 얼마나 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이고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다가가고 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이치란 어떤 것일까요?

자연은 정의롭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않습니다. 자연은 의지가 없습니다. 좀 속된 말로 자연은 그저 제 생긴 대로 그냥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그런 자연을 가지고 인간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면서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느니, 자연으로 돌아가라느니 외쳐댑니다. 정말 자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잘 모른 채 제 방식대로 자연을 규정짓고 말로만 자연을 숭배하는 것도 도시인들의 무지와 교만이 아닐까 합니다. 1977년 겨울 일본 청년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로 향합니다. 그는 알래스카에 정착한 뒤 그곳의 풍광과 야생동물, 그리고 알래스카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과 글을 통해서 거친 눈보라와 야생동물들과 부대끼며 터득해가는 자연의 생리를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새틀라이트 무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는 말합니다.

“자연은 정말 그렇게 교과서대로 움직일까? 의외로 우연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연은 약한 자까지도 포용해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책 속에서 도시와 자본과 기계문명을 떠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알래스카의 자연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1996년 쿠릴 호반에서 잠을 자다가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한 그의 마지막조차도 야생의 자연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런 죽음인 것 같습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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