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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장례의식과 생활 불교

기자명 법보신문

덕 진 스님
정토사 주지

필자는 30년이 넘는 승려생활을 통해 어찌하면 불교가 좀 더 쉽고 생활화 될 수 있을까를 골몰하고 있다. 그 결과, 천수경이나 축원 등 의식의 대부분을 한글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절에서는 모두 이를 따라 하지만 불자들 대다수가 제사와 장례식 등 가정에서 행해지는 의식은 유교식으로 하고 있다. 불교의 장엄하고 엄숙한 장례의식, 다비식과 천도재, 시식 등은 주로 사찰 내에서만 하고 가정이나 장례식장 등에서는 스님을 초청하는 경우 외에는 불교 의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교식 상례는 곡을 하고 상주는 죄인이라 하여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고 있지만, 불교는 영가의 이름으로 보시 공덕지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발원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치도록 진리의 법을 설해주고 있다. 이렇게 의미와 형식이 좋을 진데도 세간에서는 불자들조차 잘 실천하지 않고 있다.

어느 신실한 신도가 “부모님 제사를 불교식으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할 수 없을까요”라고 물어 왔다.

막상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안내서를 찾아보았지만 내용이 너무 빈약했고 형식이나 의미를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 스님들이 한글로 된 경전을 위주로 제사 때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법성게, 장엄염불 등을 독경하라고 가르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각종 행사나 의식을 불교식으로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침이 없고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 오직 절 안에서 승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종단이 중생구제를 위한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지극히 닫힌 사고에서 비롯된 처사이며 중생교화의 의무도, 이 시대 불교를 가꾸고 널리 홍포해야 하는 사명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1600여년을 내려오면서 민중과 같이 호흡해 왔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에서 신도가 할 수 있는 제례나 장례, 혼례 등 제반 의식문을 종단에서 만들고 각 사찰에서는 이 지침대로 신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신도들은 스님을 모시고 임종의식과 왕생천도 의식을 하고 스님을 모시지 않더라도 기제사나 추모의식을 불교의례로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절에서만 하는 불교가 아니라 각 가정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생활불교가 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필자가 사는 절 인근 공원묘원의 비석에는 불자나 卍자 표시가 거의 없다. 2만기에 달하는 비석 가운데 겨우 10여기의 비석만이 불교도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처사, 학생, 유인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 약 10% 정도가 십자가(十) 표시에 성도나 천주교인이라 쓰여져 있다.

이곳 울산의 통계자료를 보면 불교 인구가 50%를 넘는다. 과거로 갈수록 이는 더욱 많아진다. 그 통계가 맞다 하면 이곳에 묻힌 분들의 절반 이상이 불자인 셈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불과 0.0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유교인으로 되어 있다.

비록 불자로 생을 마감해도 사후에 유교인으로 바뀌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스님들도 노력해야겠지만 불자들도 조상님 묘지에 불교 신자임을 표시하도록 자식들에게 교육을 하고 유언을 남기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대로라면 이 시대 사람은 대다수가 유교인이 되는 셈이니 역사 기록도 오류를 빚게 될 것이 틀림없다.

불교는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다 해서 만인을 평등하게 본다. 모든 의식의 말미에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라 염하고 있지 않는가. 이치적(理)으로나 현상적(事)으로 모두 이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도 참선, 염불, 교리 등 이치적인 것만 가르치고 사회생활과 행동 등 현상적인 것을 등한시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불교 의식을 할 수 있게 그 바탕을 만들어 줘야 한다.

출산이나 생일, 결혼, 임종과 장례와 제사 등 이런 중요시기에 불교신자가 직접 불교의례를 할 수 있어야만 신행과 생활이 함께 갈수 있다. 이것이 대승불교이며 화합승이다.

요즘 사회는 한글과 영어가 많이 쓰이는데 그 옛날 쓰던 한문을 써서 염불하게하고, 생활 속에 실천 방법 없이 절에 와서 마음만 닦으라 한다면 이는 중생구제의 반에 반만 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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