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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천둥소리에 귀먹다

기자명 법보신문

무더위는 물+더위의 상극적 모순 합성어
모순을 통해 모순 넘어선 진리 자리 터득

20여일을 나라 밖으로 노닐다 어제서야 돌와왔더니, 장마가 이어지면서 기온이 올라가 여독을 푸는데에 힘이 든다.

더위가 그냥 더운 것이 아니라 무덥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 캐나다이었는데 거기에도 기온은 25-6도를 넘나들지만 더위를 느끼지 못하였으니, 습기가 전혀 없는 건조한 기온이기 때문에 땀이 나지를 않아 며칠이 지나도 속옷을 갈아 입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곧 날씨에 무더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자연의 진리란 묘한 것이다. 열기로 대표될 더위라 함이 냉기로 대표되는 물과 만나야 실제로 더위를 느낀다는 상극적 모순의 합일을 여기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말의 오묘한 합성의 기술이다. ‘무더위’란 ‘물’과 ‘더위’의 합성어이니 체온으로 받아 들이는 실제 더위를 이보다 더 절실하게 합성된 말이 있으며, 열기와 냉기의 상극적 모순을 쉽사리 결합시키니, 모순이 모순이 아닌 진리의 자리임를 터득한 언어이다.

장마철에 또 하나의 모순의 극치가 천둥 번개라 생각된다. 천지를 뒤덮는 물보라의 빗줄기 속에 천지를 밝히는 불의 벼락이 내린다는 현실이다. 가장 큰 물과 가장 큰 불이 교차되니 이것이 천지창조의 진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상극의 대치는 오히려 상생의 순환을 낳는 것인가. 한걸음 더 나아가면 우리 언어에는 어이없는 말이 현실의 진리적 언어로 둔갑된다.

맑은 하늘과 벼락이 한자리에 만나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청천벽력(靑天霹靂)’이 바로 극치의 모순적 언언이다. 맑은 하늘의 청천과 벼락의 벽력이 거리낌 없이 합성되었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이 말은 바로 의외의 큰 깨달음을 주는 일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인용되는 말이다.

천둥번개를 보면서 떠오르는 스님이 있다. 백장산(百丈山)의 회해(懷海)선사기 스승의 한마디에 사흘동안 귀가 멀었다 하니, 이 때 스승인 마조(馬祖)선사의 한 번의 외침이 바로 청천벽력이었던 것이다. 선가에서 깨우침의 방편으로 인용되는 ‘할(喝)’이 바로 마조선사가 뒤에 법을 잇는 백장선사에게 깨우침을 준 이 외침의 할에서 연유되었다 하니,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라 할 청천벽력은 바로 이러한 가르침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때의 대화는 이러하다.

백장선사가 스승인 마조선사를 다시 찾아 뵈웠더니, 스승께서 불자(拂子)를 들어 세웠다. 백장이 여쭙되, “이것을 가지고 활용하라 하심입니까. 이것을 버리고 활용하라 하심입니까.” 하니, 스승인 마조선사가 바로 있었던 제 자리에 걸었다. 백장선사가 아무 말 없이 한참 있자, 마조선사가 “네가 이후로 눈이 열린다면 장차 무엇으로 사람을 위해 일할 것인가.” 하니, 백장선사는 곧 불자를 들어 세웠다. 마조가 “이것을 가지고 활용할 것인가 이것을 버리고 활용할 것인가.” 하니, 백장선사도 불자를 있었던 곳에 걸었다. 이에 마조선사가 곧 외치니(할하니) 백잔선사는 3일동안 귀가 멀었다.

이 문답과 동작의 깊은 뜻이야 어리석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생각할 때 불자를 가지고 활용함이 사물에 부딪히는 큰 기틀이요, 불자를 버림이 사물을 떠나는 작은 기틀인 것 같아, 크고 작음의 구애 없이 활용함이 마치 그릇에 따라 물의 양이 조절되듯 하는 임기응변의 큰 뜻에 귀가 멍멍해진 백장선사의 모습을 그려 본다.

장마철의 천둥번개에 놀라 정신 차리는 만물의 성장처럼 어리석은 중생은 앞서 가신 깨달은 분들의 말씀이나 동작이 천둥번개가 되어, 올바른 진리에 3일동안만 귀먹을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귀먹어 삿된 말이 귀로 들리지 않게 된다면, 마조선사의 할의 외침과 백장선사의 깨달음이 길이 이어질 듯하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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