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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苦 양약 삼은 황혼의 자비행 깊이가 달라요”

기자명 법보신문

60대 봉사모임 한아름불자회
이 정 자 회장

“엄마, 엄마는 금방 건강해질거야. 엄마 빨리 집으로 돌아와. 사랑해.”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 딸아이의 편지. 신장(콩팥) 이상으로 병상에 누워 편지를 읽던 한 어머니의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 가슴을 적셨다. 이만하면 오래 살았구나 싶었다. 계속된 투병 생활이 지겹기도 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 걱정은 그의 삶을 부여잡고 놓아 주질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살아야했다.

10여 년 간 신장이식만 두 차례

하루에 다섯 시간 씩 일주일에 세 번, 그는 고통스러운 혈액투석을 견뎠다. 몸 속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로 팔에 고무호스를 연결해 노폐물을 걸렀다. 물 한 컵조차 시원하게 마실 수 없었다. 다량의 요소와 노폐물이 혈액에 쌓이기 때문이다. 주사바늘이 수차례 다녀간 팔에는 흉터가 고스란히 남았다.

눈물과 함께 100여 가지의 약을 삼켰다. 그의 삶에서 30~40대는 없었다.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어머니라기보다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로 살았다. 그가 누운 병상은 삶에 대한 지독한 집착과 미련이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전장이었다.

60대 불자들이 주축이 된 자원봉사모임 한아름불자회 회장 이정자(66·수월행) 보살이 또 눈시울을 붉힌다. 현재 남대문에서 의류업을 하는 그에게 고통과 눈물로 점철된 지난 30여 년의 투병 생활은 잊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마흔아홉 살 때 처음 신장이식을 받았어요. 그 때는 이식을 받아도 5년 이면 죽는 걸로 알았지요. 살고 싶다는 욕심은 자꾸 고통을 참게하고 참을수록 고통은 더해 오고…. 갑자기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죽음은 다음 생에 입게 될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는 말씀이 떠올랐어요. 마음이 어찌나 편하던지….”

그의 불연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때 외할머니가 다니시던 역촌동 수국사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마음공부를 강조하는 부처님 가르침에 가랑비에 옷 젖듯 빠져 들었다. 후엔 참선만 하시다 치질에 걸리셨다던 스님을 좇아 서울 화계사, 성남 경국사 등지를 찾았다.

불현듯 스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왔다. 허나 시련은 파도처럼 그의 삶에 달려들었다. 이식 받은 신장에 이상이 온 것. 신장을 기증한 사람이 소아마비를 앓는 사람임을 알았어도 부처님이 맺어주신 인연이라 믿었다. 믿음은 깨졌고 그는 다시 병상에 누웠다. 잠시 평안을 찾았던 마음자리도 심하게 흔들렸다.

이식 후유증은 원망과 뒤섞여 얼굴 이곳저곳에 종기로 남았다. 손만 대면 고름이 흘렀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얼굴처럼 그의 마음도 모가 났다. 부도난 옆 가게에 아주머니와 남편이 바람이 났다는 소문도 들렸다. 마음은 점점 황폐해졌다. 종기가 터진 아픔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게로 가는 길에서는 아이들이 그를 좇아오며 놀리기 일쑤였다.

매일 새벽 참선 ‘죽음’ 두려움 떨쳐

“그래도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가게에서 돈을 세는 제 모습이 그렇게 추해 보였어요. 사람의 마음은 나약한 모양이에요. 잠시 평안했던 마음자리가 뒤숭숭했죠. 극한의 고통 속에서 다시 ‘몸은 마음의 집일 뿐이다’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고통은 잔잔한 호수에 이는 물비늘 뿐이었죠. 그래서 스님들이 수행을 꾸준히 해야 마음자리가 단단해진다고 하시나 봐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얼굴보다 마음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알게 됐다. 죽음 자체보다 그 두려움에 현혹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 가을날이었던가. 남대문 가게로 가는 길에 마주쳤던 청소부 아저씨와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자신이 하나임을 알았다. 때가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청소를 하는 사람이나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버린 자신이나 한 번은 죽는 것. 주체할 수 없는 환희심과 함께 마음엔 고요함만이 남았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고통은 사라졌다.

머리에 조금씩 서리가 내릴 때쯤 그에게 소중한 인연이 닿았다. 쉰여덟,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 무렵인 쉰여덟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스님이 되라는 말을 듣곤 하는 젊은이가 신장을 기증한 것. 그는 두 번째 신장이식을 받고 혈액투석 고통에서 벗어났다. 투병 생활 중에 하던 ‘석가모니불’ 정근에 더 신심을 실었다. 업장을 소멸하고 공덕을 쌓을 시간이 더 허락된 만큼 그의 생활도 바빠졌다.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1층에 모셔둔 옥불 앞에서 『천수경』이든 『금강경』이든 독경하고 10분 간 참선으로 아침을 열었다. 하루 동안 마음자리가 그렇게 든든하다고. 송광사 수도암 등 전국에 선방이 있는 사찰이면 어디든 찾아가 2박 3일 간 벽을 보고 앉아 참선 삼매에 빠지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니 그는 오히려 남편이 더 극성이란다. 1965년 부부의 연을 맺은 박윤배(71) 씨. 남편은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을 6년 동안 빼먹지 않은데다가 저녁이면 꼭 『법화경』「보문품」을 독경하고 자리에 눕는다. 다 여읜 딸 넷도 모두 불자가 되었으니 부부는 한 없이 기쁘다고. 이제 그 동안 배운 부처님 가르침을 행하며 삶을 회향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바람이다. 그의 바람은 이미 시작되었다. 가게를 연 후 가게에 탁발하러 온 스님들을 위한 돈은 꼭 줄에 매단 소쿠리에 보관한다. 하루 서너 차례 탁발 스님들이 다녀가면 소쿠리는 헐거워지기 마련. 그래도 그는 즐거운 모양이다.

“알맹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지는 것 같아요. 전 열아홉 살입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에 집착을 버리니 마음은 갈수록 건강해져요. 황혼은 뜨거우나 빨리 식어 버리잖아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만큼 부처님 가르침을 행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봉사모임 이끌며 여생 회향이 꿈

<사진설명>한아름불자회는 8월 20일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노인 2300여 명에게 대중공양을 내고 배식과 빈 그릇을 치우는 일을 도맡았다.

2000년 60대 불자들이 모여 창립한 한아름회, 현재 막내라고 해봐야 40대 후반인 회원 등 모두 40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아름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지난 8월 20일 백중을 1주일 앞두고 회원 20여 명과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230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대중공양을 냈다. 어르신들은 평소 맛보지 못했던 오리불고기 특식에 젓가락이 연신 오리불고기로 향했다. 한아름회는 ‘한아름회 자원봉사단’이라고 적힌 노란띠를 두르고 직접 배식과 빈그릇을 치우는 일을 도맡았다. 2005년부터 시작된 대중공양은 매년 백중과 동짓날이면 어김없다.

한아름회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마다않고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 백중 대중공양과 함께 서울노인복지센터를 통해 홀로 생활하시는 어르신 23명을 추천 받아 겨울나기 물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소년소녀가장 22명에게 생활비 10만원 씩 회원들의 정성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7월 강원도 일대를 휩쓴 태풍 에위니아 수해지역에는 옷과 이불 등을 전달했고 신장병, 대장암 등 중병을 앓고 있는 이와 인연이 닿으면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연해 수술비를 선뜻 내놓았다.

“오물을 다 받아들여 정화시키는 바다가 돼 청정하게 살라”는 구산 스님을 말씀을 받들어 ‘한아름’이란 이름을 만들었다며 넉넉한 웃음을 짓는 그. 오늘도 옷을 팔아 번 돈을 소쿠리에 정성스레 담으리라.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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