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신은 편의점에 간다
오늘도 당신은 편의점에 간다
  • 법보신문
  • 승인 2007.08.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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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소설집 / 창비

도시인들의 표정은 상당히 이중적입니다. 낮 동안 사람들의 무리 속에 뒤엉켜 지낼 때의 얼굴과 밤이 되어 홀로 종일 비워두었던 제 방으로 돌아가서 스위치를 켤 때의 얼굴은 사뭇 다릅니다.

주머니에 명함을 넣고 다니는 도시인들은 홀로 골목을 걸어갈 때나 밤의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는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두 개의 이름을 지니고 삽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과 아무에게도 불리고 싶지 않은 무명(無明) 혹은 익명(匿名)이 그렇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동영상이 일상화되어버렸지만 안전을 위한다는 cctv에는 심하게 거부감을 갖습니다. 익명성, 소통하고 싶어 하면서도 누군가가 내 내면에 들어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이중성, 어쩌면 현대인들의 특징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낮 동안의 노역에 지친 도시인들이 어둔 거리를 되짚어서 집으로 돌아갈 때, 밤이라는 어둠의 바다에 등대처럼 불을 밝힌 편의점은 언제나 그들의 좌표가 됩니다. 뿌리가 내리지 못하는 아스팔트에서 자라나 부초처럼 떠다니는 도시인들은 그 새카만 밤거리에 환하게 불을 밝힌 편의점에서 자기를 억지로라도 귀속시킬 강제를 바라는 것일까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툭툭 모습을 드러내고 마법에라도 홀린 듯이 환한 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진열된 상품 속에서 그날의 마지막 상거래를 합니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긴 대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낮 동안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들을 다 토해 내기도 합니다.

소설가 김애란이 이런 현대인들의 행태를 세밀하게 그려낸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를 읽으면서 정말 깊이 감탄하였습니다.

김애란의 소설집을 사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인터넷 누리꾼들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대체로 20대로 추정되는 독자들의 독후감이 괜찮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초판 1쇄가 나온 지 2년이 조금 넘게 11쇄나 찍은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 20대인 작가의 사진과 프로필에서 꽤 자기 세계가 분명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사서 읽게 하였습니다. 그만큼 나는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질곡의 세월이 빼곡하게 담겨 있고, 역사와 사회가 당시 사람들에게 슬쩍 던져준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청춘을 소모해버린 회한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들은 대체로 자기와 똑같은 시대를 살아온 독자보다 반 발자국 앞서서 다시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고 보통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쳤을 일들 속에서 기가 막힌 주제를 끌어당겨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런 우여곡절의 심란한 세월을 훌쩍 지나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 사회의 청년세대로 들어앉은 지금, 그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뇌리에 박힌, 그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것들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면 이 책에서 조금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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