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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버린 실크로드 여행길

기자명 법보신문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 홉커크 지음 / 사계절

참 광막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툭 트이기 보다는 먹먹하고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그 거대한 모래바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에어컨이 빵빵하게 작동하고 있는 버스에 편히 앉아서 종단하면서도 나는 기가 질렸습니다.

사계절 내내 쉽사리 길을 내어주지 않는 실크로드, 그 실크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클라마칸과 고비사막.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2천 년 전부터 그 길을 걸어가려 하였고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딱 두 부류의 사람만이 이 길을 지나갔을 것입니다. 크게 한탕 하여 한 밑천 톡톡하게 거머쥘 생각을 품은 사람이거나 혹은 고향에 피붙이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아 오직 앞만 보고 갈 수 있는 사람 - 전자는 낙타에 물건을 싣고 오가던 상인이요, 후자는 서역과 천축을 향해 순례에 오른 구법승입니다. 그렇다면 노란 모래바다에 파묻힌 유적지를 발굴하러 이곳을 찾은 탐험가들은 전자에 속할까요, 후자에 속할까요?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오래된 고대유적을 발굴하던 유럽 탐험가들의 귀에 저기 저 멀리 중앙아시아의 모래더미 속에 엄청난 뭔가가 파묻혀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학문적 호기심과 영웅심이 뒤엉킨 이들은 목숨을 내걸고 모래사막으로 달려들었고 은화 몇 닢을 지불하고 수십 수백 상자의 유물들을 자기네 나라로 실어갔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당시 중국이 “어, 저 사람들이 뭘 하고 있지?”하며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을 때 아시아의 보물은 유럽으로 고스란히 빼돌려졌습니다. 모래사막 속 유적들이 거의 다 털린 뒤에야 “이런 몹쓸 서양의 귀신들!”이라고 분개하며 빈집의 문을 닫아건 중국이 안타깝습니다.

무슬림에게 눈알이 패이고 그곳에 사는 농민들에게 잘려나가고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모래바람에 뒤덮이고 유럽의 지식인들과 장사치들에게 약탈당하고 금괴를 찾는 도굴범들에게 파헤쳐지고 홍위병들에게 긁히고 훼손된 중앙아시아의 텅 빈 유적지를 돌아보며 나는 그토록 고대하던 실크로드행이 실은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여행임을 확인하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돈황 막고굴의 학자이며 한국어 해설가인 리신(李新) 선생은 스타인과 헤딘과 르콕과 펠리오와 워너와 오타니의 사진을 가리키며 “도적들”이라고 속삭였고, 근처에 무슬림들이 있는지 둘러본 뒤에 이슬람의 무자비한 파괴행위와 홍위병들의 무지한 행태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다시 심각한 훼손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막고굴.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막고굴을 닫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겠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물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유물과 보물들을 돌려주고 역사왜곡을 멈추고 무력으로 차지한 땅에서 얌전히 물러나는 일? 누가 먼저 시도할까요? 그러고 보면 지금 지구상의 좀 잘 산다 하는 나라들은 거의가 인류역사의 죄인이요 약탈의 공범임에 틀림없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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