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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물들면서 물들지 않는다

기자명 법보신문

며칠간 계속되던 가을비가 그치고 나니 바다가 다시 열리고 있다. 이맘때면 농촌의 부모님들은 추석에 찾아올 자식들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뿐이었지만 요즘 때 아닌 가을장마에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 수행하는 사람도 이맘때가 되면 한해의 농사를 가늠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 농사는 해마다 더하는 일이지만 법농사는 해가 갈수록 덜어서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향엄선사는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있더니 금년 가난은 참가난이라 송곳마저 없다고 노래했다. 법을 모를 때에는 깨달아 보겠다고 있는 힘을 다해 보지만 문득 이 농사는 세상과 달라서 유위법이 아니기에 힘을 쓸 일이 아님을 알게 된 후로는 천연의 성품에 맡겨서 유유자적하여 세월이 흐르다 보면 덜고 덜어 어느덧 무위법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거친 파도를 넘기는 오히려 쉬웠지만 순하고 미세한 물결마저 잠재우기는 참으로 난해한 일이었다. 파도와 물이 둘이 아닌 줄만 깨달으면 더 이상 할일이 없지만 과거의 습기는 워낙 미세해서 파도가 일어나면 다시 없애려는 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무시이래로 익혀온 습기가 마음이 경계를 반연하여 생긴 줄 모르고 마치 마음 밖에서 비롯된 것인 줄로 착각하여 끝없이 흐르다 보니 어느덧 먼 바다에서 표류를 하게 되었다. 백천만겁에 다행히 만나기 어려운 불법의 인연을 만났으나 다시 흐름을 돌이켜서 역류하는 작업이 수행이고 보니 익혀놓은 업력의 험한 파도를 잠재우기가 쉬운 일이 아니며 한바탕 목숨을 버리는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허공은 본래 밝고 어두움에 상관이 없지만 밝음이 오면 밝다고 하고 어둠이 오면 어둡다는 견해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본래의 성품에는 선악이 없지만 선악이 있다는 착각으로 참 성품을 등지게 된다.

공부가 쉽지가 않은 것은 선악에 물들지 않은 성품이 물듦이 없이 물들고 물들지 않으면서 물들어 있으니 구별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참으로 밝히기가 어렵다. 그래서 원효스님은 대승기신론에서 진망화합으로써 여래장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업상과 전상과 현상의 삼세 미세망념의 뿌리가 뽑혀야 비로소 허공과 같은 마음이 드러나서 깊은 잠이 그대로 거울속의 사람처럼 비치게 된다. 한번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고 해서 돈오돈수를 주장하지만 이것은 최상근기의 일이고 참으로 수행은 깨닫고 나서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역대조사가 끝없이 보림을 통해서 습기를 녹이고 다시 경율론 삼장을 열람하고 수행의 공력을 쌓아서 일체 만행을 성취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하늘은 이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질 것이다. 어느덧 이것이 사람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천연의 성품으로 돌아가서 허공 속을 거닐게 된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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