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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기도 해라! 참회도, 용서도.

기자명 법보신문

『밀양』
원제, 벌레 이야기
이청준 / 열림원

영화 〈밀양〉이 개봉될 때 한달음에 달려가서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전도연과 송강호의 연기에 빠져들어 원작의 메시지를 행여 놓치게 될 것 같아 소설 〈벌레이야기〉부터 먼저 펼쳤습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초등학생이 실종되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사라진 순간부터 모든 정상적인 삶을 박탈당합니다. 아이는 처참하게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이제 경찰은 범인 수색에 나섭니다. 범인은 쉽게 잡혔고 국가는 사형이라는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렸습니다. 범인은 사형 당하였습니다. 제 자식 죽인 놈을 붙잡아서 그 부모가 보복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기 전에 국가가 알아서 처벌을 내려주었으니 자, 이것으로 사건 끝!

하지만 소설은 그런 일련의 사건보다 그 아이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이의 엄마를 찾아오는 김집사를 통해 ‘종교’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재단하고 정의 내리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철저하게 배제되고 농락당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줄기차게 묻습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나요? 용서해야 하나요? 누가 용서해주는 건가요? 아이의 불행은 내가 주님을 영접하기 위한 장치였나요? 범인이 참회하고 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그 죄는 사라지나요?

김집사는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까지 마음을 낸 아이엄마가 돌연 신앙을 저버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죄 없는 아이를 죽인 범인은 구원받고 용서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안타까운 희생이 벌어집니다. 아이엄마가 자살을 하고 맙니다.

아이의 엄마도 천당에 갈까요? 신의 사랑을 불신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말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 귓가에는 찬송가 한 구절이 들려왔습니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이 기도는 인간 세계를 당신의 뜻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더도 덜도 말고 그 기쁨과 슬픔을 인간적으로 느껴보라는 부탁일 것입니다.

비단 개신교뿐이겠습니까? 소설은 아이 엄마의 자살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종교인에게 이렇게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행자들 그리고 신자 여러분. 정말 당신들이 충실히 따르는 가르침이 ‘진리’라면 세치 혀끝으로 참회니 용서니 구원이니 업장이니 말하기 전에 아이 엄마를 살려내십시오. 아이가 죽어간 것만으로도 세상의 불행은 충분합니다. ‘신’이라거나 ‘진리’라는 애매모호하고 거창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에 ‘인간다움’이 짓밟힐 때 바로 거기에 가장 어두운 비극이 싹틉니다.

그리고 제발 자기에게 솔직해집시다. 한 번만이라도. 어쩌면 신과 진리가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닐까요?”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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