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5 초목은 유정인가 ? (2)

기자명 법보신문

초목, 유·무정 떠나 작은 생명 의지처
모든 존재 소중함 일깨우기 위한 방편

불교 발생 당시, 인도의 종교계나 일반사회가 초목도 윤회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에 반해, 불교경전에서는 초목의 영혼을 인정하는 교리는 발견하기 어렵다. 불교의 초목에 대한 입장은, 초목에 관한 대표적인 율 조문인‘괴생종계(壞生種戒)’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초목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금지하는 율인데, 빨리율에서는 이 율이 제정되기에 이른 인연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부처님께서 아라비라는 곳에 머무르고 계실 때 어떤 비구가 나무를 잘랐다. 그런데 그곳에는 수신(樹神)이 살고 있어 화가 나서 그 비구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수신은 마음을 진정하고 부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여 다른 나무를 살 곳으로 얻게 되었다. 일반사람들은 그 비구의 행동은 하나의 감각기관을 지닌 생명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라며 비난했고, 부처님께서는 세간 사람들은 나무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 생각(有命想)을 지니고 있다고 하시면서, 초목에 상처를 내거나 자르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이 인연담으로부터 보건대, 불교수행자가 초목을 해쳐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초목에 살고 있는 수신 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자, 초목도 생명을 지녔다고 보는 당시 일반 사람들의 통념을 반영한 결과이지, 결코 초목에 대한 불교승단 자체의 교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는 아닌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위의 율 조문에서 초목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부따 그라마(bhUta-grAma)’라는 용어이다. 부따는 생명을 지닌 것, 즉 유정을 의미하며, 그라마는 촌락이라는 의미이다. 즉 유정이 사는 촌락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불교교단이 초목 자체를 생명을 지닌 것으로 본 것이 아닌 생명을 지닌 것들, 다시 말해 벌레나 곤충, 혹은 갖가지 정령들이 모여 사는 하나의 마을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점은 한역율의 기술로부터 더 명확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십송율』에서는 이 말을 귀촌(鬼村)으로 번역한 후,‘귀촌이란, 생초목(生草木)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의 의지처를 말한다. 중생이란 나무의 신, 개울의 신, 강의 신, … 모기, 등에, 장구벌레 등이다. 이들 중생은 초목을 집으로 삼고, 마을·취락·도읍으로 삼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초목은 수신이나 모기 등이 사는 곳이므로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판단하건대, 불교에서는 원래 초목의 영혼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초목을 해치는 것을 금지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중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수행자들이 들에 핀 풀 한 포기, 나무에 달린 과일 하나, 나무 한 그루 함부로 뽑거나 따거나 벨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이는 그 안에 있는 작은 생명에게 해를 입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기반에 있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욕심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며, 항상 주어지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오로지 수행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양으로 만족하는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후 발전한‘초목국토실개성불(草木國土悉皆成佛)’, 즉 초목이나 국토와 같은 비정(非情)한 것 역시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의 배경에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밥상 위에 올려지는 한 그릇의 나물이든 사과 한 알이든 그냥 생겨나는 것은 없다. 대지와 비,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조화, 그리고 때로는 인간의 노력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어찌 함부로 하겠는가.
 
도쿄대 외국인 특별연구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