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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도 거지였잖아요

기자명 법보신문

『거지성자』
 전재성 지음 / 안그라픽스

동생은 왕인데 형은 아주 가난한, 그런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은 형이 살고 있는 시의 시장에게 큰돈을 건네주면서 가난한 형을 도와주라고 요청했습니다.

시장이 형을 찾아가 돈을 건네자 형이 말했습니다.

“나는 필요 없습니다. 내게 주려거든 부자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시장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에게 주라는 말을요.

하지만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자 시장은 하는 수 없이 그 큰돈을 부자들에게 모조리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동생인 왕이 형을 찾아갔습니다.

“형님, 시장한테 돈을 받으셨지요? 그 돈을 어디에 썼습니까?” “아하, 부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지.”

동생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왕 남에게 주려면 가난한 사람에게 줄 것이지 왜 부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습니까?”

그러자 형이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자들은 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항상 더 많은 돈을 바라네. 그러니 그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궁핍한 자들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행복한 부자란 없는 법이거든.”

무심코 글을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몇 해 전, KBS의 ‘일요스페셜 - 무소유의 삶, 거리의 수행자 페터 노이야르’를 보면서 달콤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목에서는 ‘거리의 수행자’라고 하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습니다. 직업도 갖지 않고 돈도 벌지 않고 말 그대로 누더기를 입고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는 사람. 하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그 길을 가장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그의 눈빛은 그 어떤 수행자들보다도 맑고 깊었습니다. 그는 주워온 음식을 아주 오래오래 꼭꼭 씹어 먹고 누더기를 깁고 그리고 하루 종일 명상을 하거나 대학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책으로 그 거지성자를 만났습니다. 책 속에는 동서고금 성자들의 아름다운 가르침이 빽빽하게 담겨 있습니다. 동방의 예수라 일컬어지는 시인이자 수행자인 카비르의 시가 푸짐하게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등장하는 세익스피어의 문장에는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처님도 거지였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분명한 거지, 그 정신은 너무나 숭고하고 심오해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거지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닮고 싶고 따르고 싶어 했던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분의 제자들은 어떠합니까? 까짓! 좀 버리면 어떻습니까? 천상천하의 독존이 되려면 백 마디 진리의 말씀보다도 일단 주머니를 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버리고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생생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날 텐데 말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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