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선 스님]태풍 ‘나리’

기자명 법보신문

태풍 나리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다. 그 동안 섬에서 겪은 어느 태풍보다도 유래가 없이 많은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어서 피해가 많았다.

다행히 도량 주변에 큰 나무들이 감싸고 있어서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주느라고 허리가 휘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인연들이다. 앞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으로 세고 강한 슈퍼태풍이 온다고 하니 인간의 욕망이 갈수록 치성해져 태풍도 따라서 강해지고 덩치를 키우는가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더구나 요즈음 승가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어 섬에 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남의 집안 일이 아니어서 참으로 밖에 나가기가 부끄럽다. 승가의 생활도 예전보다 편리해 지고 의식이 풍족한 것은 사실이나 스님들 사이에 훈훈한 기운은 갈수록 사라지고 서로 편을 갈라서 줄을 서지 않으면 아파도 몸을 추스릴 공간이 없으며 치열하게 정진하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아서 쓸쓸하다는 엊그제 만난 도반 스님의 이야기가 현실인 것 같다. 생각이 바른 사람은 갈수록 내몰리고 세력이 힘이 되어 법이 사라지고 있으니 이러다가는 수행도 경력 쌓기가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얼마 전에는 원로의원이 되신 은사 스님을 만나 뵙고 나서 천진하신 마음만큼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 하신 말씀이 “법정 스님이 언제 원로의원 하신다고 하더냐, 공부가 수승하고 덕이 높아야 원로이지 나는 아직 자격이 없다”고 하셨다. 효봉 큰 스님께서는 머리 깎고 중이 되가지고 시주물 받아먹고 명예나 탐하면 지옥에 중이 제일 먼저 간다고 하셨다며 효봉 큰 스님처럼 장좌불와로 용맹정진하여 갈 때도 좌탈입망으로 열반성적이 나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요즈음 스님들이 참으로 인과가 무서운 줄 모르고 만나면 세상 이야기나 하고 좋은 말사나 차지해서 편히 살면서 포교도 안하고 공부하는 사람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은사 스님 말씀을 들으며 더욱 부끄러움을 느껴서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곧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올해는 쉬는 날이 많다고 하지만 지급되는 상여금은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저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고생을 하면서 부모님과 고향을 찾는 것은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객지에서 받은 서러움과 고통을 형제들과 나누고 차례를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푹 쉬려는 것이니 일반 휴가와는 그 질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긴 휴가가 오히려 가족들의 화합을 멀어지게 할 수가 있으니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님 앞에서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형제간에 서로 자존심은 버리고 멀어진 우애는 키워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서 깊은 휴식이 되고 돌아갈 때는 에너지가 충만하여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 잃어버린 자신감이 다시 넘쳐날 것이다. 세상에 가족만큼 든든한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유리벽을 타고 오르다 다시 미끄러지며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인들은 욕망의 유리벽에서 내리는 것만이 크게 사는 유일한 길이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