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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라한이 화를 낸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게으른 동생에게 호통 치며 “승단 떠나라”
분노의 모습으로 수행 격려한 자비의 발현

수행자에게 최고의 수행 덕목은 인욕, 즉 잘 참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행을 이룬 사람들은 결코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꾸짖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전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법구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라한을 이룬 한 성자가 이제 갓 출가한 비구를 심하게 야단쳤다. 그 비구는 성자의 속가 동생인데 출가한지 넉 달이 되도록 게송을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한 것이었다. 이 동생 비구는 전생에 어떤 비구를 바보라고 놀린 업보로 인해 이번 생에 어리석게 태어난 것이었다. 동생 비구를 야단치던 성자는 화를 내며 “공부를 게을리할 것이면 당장 승단을 떠나라”고 호통을 쳐 댔다. 이 모습을 본 다른 비구들은 “저 아라한이 꽤나 화가 난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라한에게는 그 어떤 성냄이나 감각적인 욕망 따위의 미세한 번뇌가 없다. 저 아라한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분노를 일으켜서가 아니라 동생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이다.”

화를 내며 동생을 꾸짖고 있는 아라한의 행동은 마치 분노에 휩싸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라고 칭할만한 그 어떤 감정도 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분노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동생이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해 야단치는 방법으로 그를 독려한 것이다.

불교예술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석굴암의 안쪽 벽면에 모셔져 있는 십일면관세음보살님의 조각을 살펴보면 열 한 개의 얼굴 중 험하게 일그러져 화를 내고 있는 얼굴이 하나 있다. 대자비의 관세음보살님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분노에 타오르고 있는 이 얼굴은 악한 중생을 보고 화를 내는 관세음보살님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관세음보살님이 이처럼 화를 내는 이유는 악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 즉 슬픈 마음을 일어났기 때문이다. 악한 행동으로 인해 결국 악업의 고통을 받게 될 그 중생이 불쌍해 슬퍼진 관세음보살님이 그를 구하기 위해 무서운 얼굴로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호통이기 보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진 당부인 것이다. 대자비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을 그토록 험하게 일그러뜨릴 만큼 처절한 슬픔인 것이다.

우리는 십일면관세음보살님의 이 일그러진 얼굴을 ‘분노존’이라 칭하기도 한다. 분노에 가득 찬 모습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잘못된 표현이다. 그 일그러진 얼굴이야 말로 분노로 가득 찬 모습이 아닌 대자비를 베풀고자 손을 내미는 관세음보살님의 참모습인 것이다.

어린 동생을 야멸차게 나무란 아라한의 깊은 속내 역시 이와 같은 것임을 부처님께서는 일깨워주셨고, 그 동생 또한 형의 질책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해 수행을 성취했다.

우리는 남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기를 좋아한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 곧잘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는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며 상대의 잘못을 냉정하게 꼬집어 내라고 부추기는 그 무엇이 분노였는지 아니면 깊은 슬픔의 덩어리였는지. 이는 오직 스스로만 알 일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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