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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서역을 다녀와서

기자명 법보신문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사람은 천일을 두고 항상 좋을 수 없고
꽃은 백일을 두고 붉을 수 없다.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서안의 법문사 참배를 기점으로 둔황, 투루판, 우루무치를 거쳐 오는 8일간의 여행이었다. 법문사는 부처님의 지골사리(가운데 손가락 뼈)가 모셔진 곳이다. 기원전 240년 경, 인도를 무력으로 통일한 아쇼카 왕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처님 성지마다 탑을 세우고 세계 곳곳에 법사단을 조직해 사리와 경전을 들려 불법을 전하기 위해 파견한다. 기원전 243년, 석리방을 비롯한 18명의 법사단이 지골사리1과와 진신사리 18과를 들고 30여 개 국을 거쳐 3년 만에 지금의 서안 근처에 당도한다. 들판에서 하루를 머물던 일행은 “아직 몸을 드러내지 말라”는 부처님의 교시를 받고, 다음날 갑자기 솟아오른 성총(聖塚)에 사리를 묻어 놓는다. 그리고 네 조로 나눠 사방으로 전법을 떠나는 데, 1년에 한 번씩 초파일에 만나는 모임을 30년간 지속하게 된다.
 
법사단이 모두 죽고 세월이 흘러 147년, 후환 환제 건화 2년. 서역 파르티아 고승인 안세고가 이곳을 지나다 땅에서 솟아나는 방광을 보고 황실에 알려 땅을 파다 석리방이 기록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벽돌과 사리함이 발견되어 기적의 전모를 알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목탑을 세우는 한편, 나머지 사리는 각지의 사찰에 나눠 봉안한다. 황실의 각별한 보호를 받아오다 당대(唐代)인 874년 희종 이르러 지하궁에 사리를 봉안하고는 잦은 전란과 지진으로 사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벽돌로 다시 조성된 사리탑(1607년)에 1981년 벼락이 내리쳐 탑을 반으로 가르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탑에서는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도량엔 천상의 향기가 가득했으며 비둘기들이 탑 위를 끝없이 선회했다고 한다. 발굴 작업을 거쳐 지하 궁에 잠자던 갖가지 부장물, 그리고 지골사리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1113년만의 일이다.

우리가 법문사에 도착했을 때는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도량을 적시고 있었다. 법당과 지하궁의 지골사리를 참배하며 불은이 이날까지 이어져 온 것에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둔황에서 이틀을 묵었다. 고비사막으로 이어지는 척박한 곳. 북으로는 사나운 유목민족인 흉노와 돌궐족을 상대로 한 한족의 끊임없는 싸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까지의 장도에 목숨을 건 구법승들 숨결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듯 했고, 막고굴을 비롯한 불교 유적을 둘러보며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불법의 현장에서 나는 천년의 숨결이 내 몸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에 전율했다.

한 때 부처님 땅이었던 둔황에도 개발이 서둘러져 인구는 30만으로 몸집이 불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막의 조그만 도시는 생활용수를 모두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해서 더욱 놀랬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자연이 인간의 욕망을 언제까지 채워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천일에 항상 좋을 수 없고, 꽃이 백일을 붉지 않을 터, 인간이 하는 일이란 게 이렇듯 항상 걱정스러운 건 무슨 까닭일까? 그곳은 사막의 뿌연 모래먼지가 밤의 어둠보다 먼저 내려앉았다.

남은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니 가을이 완연하고 밀린 일은 줄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쯤 서역에 산재한 백양나무에도 가을이 가득 내려앉았을 것이다.

산다는 것, 다만 한 때의 일일까?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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