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직 법에 의지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7.11.07 14:06
  • 댓글 0

주 영 운
행원문화재단 이사장

신문 펼치기가 두렵고 텔레비전 쳐다보기가 가슴 떨립니다. 누군들 살면서 잘못 하는 일이 없고, 누구들 살면서 원한 지는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니 잘못이 드러나 질책을 받기도 하고 때론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사이 불교계에 관해 전해지는 소식들을 들을라치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부풀려진 것인지를 따지기도 싫을 만큼 눈살이 찌푸려질 뿐입니다. 더욱이 출가한 스님들 사이의 다툼과 힘겨루기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성속을 구분없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속이 성을 걱정한다’는 어떤 논객의 표현이 헛말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교단내의 다툼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승단 내에 사소한 오해가 일어 패거리가 형성되고 다툼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재가신도까지 합세하여 교단 자체가 분열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차례 타이르며 화합할 것을 당부했으나 소용이 없자 어느 날 발우를 챙겨 들고는 훌쩍 승단을 떠나버리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승단을 떠나 홀로 숲으로 들어가 코끼리의 시봉을 받으며 지내신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재가자들은 싸움을 일삼는 승가에 대한 공양을 거부했고 결국 끼니마저 곤궁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승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부처님께 잘못을 빌었다고 합니다.

재가신도들이 승가에 공양을 거부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력행사’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요즘도 종종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신도들이 사찰에 가서 시주하지 않고 스님들 공양하지 않으면 이렇게 싸우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출가자가 수행하지 않고, 화합하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명분으로 공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재가자가 수행하지 않고 화합하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집단에라도 공양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복전을 일구는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이는 실력행사라기보다 오직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하기 위한 고육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에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따져서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으로서 사태를 해결하려했다면 아마 부처님께서는 영영 승단으로 돌아오지 않으셨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교단을 사부대중으로 구성한 것은 각자 그 정해진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낼 때 교단은 유지되고, 그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가운데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는 인천의 스승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불교계가 이런 저런 의혹에 연루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문제점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출가자의 마음이 오롯이 수행에 쏠려있지 않고 재가불자의 마음이 오직 부처님의 정법을 따르는데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 불교계가 이처럼 뼈아픈 지탄을 받아야 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탓하고 남의 잘못을 벌하려 들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면 더 이상 남들의 질책에 가슴아파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아픈 현실은 너무도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을 너무 가벼이 여겼던 과보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앞서 제자들에게 오직 한 가지만을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법에 의지하고 자신을 의지해서 수행하라고. 부처님께서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 삼고 자신을 지팡이 삼는 다면 우리는 불난 집과 같이 위태로운 이 사바의 고해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암담하고 한발 내딛을 자리가 가시밭 같다할 지라도 오직 법에 의지하여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오늘날 불교계가 처한 이 위기를 우리는 극복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