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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문자반야

기자명 법보신문

불립문자란 일체경전 포섭의 의미
사람마다 본래 한 권의 경전 있어
반일은 좌선하고 반일은 경전보라

도량에는 고절한 국화꽃 향기가 청아하게 흐르고 풀씨는 바람을 타고 먼 적멸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전을 독송하며 평생을 신심으로 살아온 노거사님께서 전화가 왔다. 낙엽은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데 아직 인생이 돌아갈 곳을 몰라 왠지 불안하고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은 세상사에서 크고 작은 일을 당할 때마다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경전의 문자가 공한 줄을 모르고 집착하여 지혜를 밝히지 못하고 안심입명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사미계를 받고나니 어른 스님들께서는 경전을 익히면서 사문의 위의를 갖추고 발심이 되면 선방에 가도 늦지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소리로 건립된 경전의 명칭과 구절들이 본분사를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여 한순간도 지체할 수가 없어서 선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에서는 화두를 제시하는데 이는 언어 이전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화두 하나를 관조하여 밝히게 되면 문자반야로써의 일체 경전을 포섭하게 되어 실상반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 경전을 볼 때마다 문자 하나하나가 근본 지혜로부터 발생하여 그대로 대용인 문자반야로써 현전하게 된다. 이것을 대주혜해 선사는 “영리한 사자가 흙덩어리를 물지 않고 던지는 사람을 물어버린 것과 같다”고 했으며 단경에서 육조스님께서는 “경을 굴린다”고 했다.

선과 교가 둘이 아니지만 경전의 명칭과 구절들을 분별하고 뜻을 따라간다면 근본 지혜를 등지게 되니 이는 마치 어리석은 개가 흙덩어리를 무는 것과 같고 경에 굴림을 당하는 것이다. 경을 보다가 발심을 한다는 말은 이론의 분별이 갈 데까지 가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앞뒤가 꽉 막혀 참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발심이 되지 않았는데 좌선한다고 앉아만 있으면 어리석음만 키우기 때문에 경전을 보면서 문자의 뜻에 따라가지 말고 반드시 회광반조를 해야 할 것이다. 경전을 보다가 깨달은 선사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반일은 앉아서 좌선을 하고 반일은 경전을 보라고 했다.

선에서 불립문자라고 하는 말은 한글자도 세울 수 없지만 일체 경전을 포섭한다는 말일 것이다. 사람마다 본래 가지고 있는 한권의 경전이 있는데 종이와 문자로 이룩되지 않았고 펼치면 글자 하나 없지만 항상 대광명을 발하고 있다. 가을산은 울긋불긋 단풍경을 설하고 바다에는 저녁노을이 황금빛 물결로 출렁이며 노을경을 설하고 있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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