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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의 詩로 읽는 불교]32. 화엄①-‘헌화가’

기자명 법보신문

존경의 마음으로 ‘헌화’…화엄 구현 상징

<사진설명>‘헌화가’의 ‘진달래꽃’은 ‘미’를 상징한다. 신라인이 미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헌화가는 사랑노래이기보다 화엄의 이상을 구현한 노래다. 사진은 불교사진연합회 조현숙 부회장의 ‘장엄’.

붉은 바위가에/잡고있는 어미소 놓으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 성덕왕(聖德王: 702~737) 때 견우노옹이 수로에게 꽃을 바치며 부른 노래이다. 『삼국유사』, 「수로부인」 조엔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이를 풀어서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순정공, 강릉 태수 부임하러 서라벌을 떠나, 시종 데리고 동해변 따라 길을 청했는데, 진초록빛 바닷물에 넋을 빼고 혼을 앗기다가 시장기 느꼈는데, 좌우로는 천길 석벽 까마득, 앞으로는 동해 물결 넘실넘실, 그 새로 금빛 모래 초승달처럼 멋들어지게 꺾어져선 반짝반짝. 수로부인 그 모습에 반하여 점심상을 차렸더라네.

끼 넘치는 ‘신라판 미시족’

수로부인, 동해바다보다도 깊고 봄 햇살보다도 빛나는 눈을 들어 풍광을 살피는데 거기 하늘로 닿은 절벽 위 바위 새로 연분홍빛 진달래, 시리도록 파란 하늘 이고 금빛 햇살 안고 수줍은 듯 자랑스러운 듯 하늘거리고 있었더라. 수로는 너무도 탐이나 시종들에게 꺾어다 줄 것을 권하였네만, 시종들 상전의 말을 어길 수 없어 절벽을 바라보았네만, 고개를 젓는 시종들과 꽃을 번갈아 보고는 수로부인 재차 재촉하였네만, 시종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똑같이 “저 절벽은 사람이 발 붙여 올라갈 데가 못 되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마지못해 돌아서는 수로에게 웬 늙은 노인이 새끼를 밴 암소를 끌고 와 잠시만 기다려달라더니, 희끗희끗한 귀밑머리 날리며 훠이훠이 나는 듯 절벽 올라 한 아름 가득 진달래 꽃 안고 와 ‘헌화가’를 부르네.”

성덕왕이 어느 봄날 순정공을 강릉 태수로 제수하였던 모양이다. 다른 기록에 이름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가 경덕왕의 비 삼모부인을 낳은 이찬 김순정(金順貞)이라는 설도 있다. 신라인의 이름에 같은 음을 가진 다른 한자를 쓴 예가 많다. 김순정이 성덕왕 25년(726)에 죽었으니 삼모부인의 출생년이 하한선이 이때인데 경덕왕 또한 성덕왕 22~23년에 태어났으니 둘은 연령이 비슷하다. ‘부인(夫人)’의 호칭은 아무 지어미에게 쓴 것이 아니라 왕비, 왕의 어머니, 왕비의 어머니, 김유신이나 박제상의 처처럼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일가의 부인에게 내리는 칭호이니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로(水路)’란 무엇일까? 김재붕 교수는 수로가 ‘salya’에서 ‘saro’, 다시 ‘suro’로 변형된 것이며 ‘태양’을 뜻하는 범어라 한다. 단순히 이 하나만의 유사성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신라왕도명과 6부명이 ‘성스러운 땅’을 뜻하는 ‘san+lyan’과 사량(沙梁), ‘굽은 땅’을 뜻하는 ‘kub+lyan’과 급량(及梁) 식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순정공의 처이며,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귀신에게 잡힐 정도로 용모와 자색이 빼어난 미인이다. 한 마디로, 수로부인은 타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미인이요, 태양처럼 눈부시고 높은 존재이다. 그녀 스스로 아름다운 미인이지만 절벽 위 꽃을 원할 정도로 더 높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적인 여인이요, 자의든 아니든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뭇 남성들을 유혹할 정도로 다분히 끼가 넘치는 ‘신라판 미시족’이다.

소 끄는 노인이라는 뜻의 견우노옹(牽牛老翁)의 문제 또한 아직 이설이 분분하다. 이를 농신(農神), 신선, 선승, 풍요와 생산을 주관하는 샤먼에서 농부에 이르기까지 해석이 다양하다. 신이나 신의 대리자로 보는 것은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절벽을 올랐다는 기술과 글 끝부분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라는 대목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절벽이란 과장된 표현이다. 실제로 경주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사람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절벽이 존재한다면 모르되 그런 절벽은 없다. 그럼 왜 이런 표현이 나타났을까? 서라벌에서 도시생활만 해온 시종들이 높은 절벽에 오르기란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 정도의 일이지만, 그곳 지리에 익숙해 절벽 틈새까지 속속들이 아는 이에게 이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히말라야 등반대도 몰살하는 설악산 죽음의 계곡을 아무런 등산장비 없이 신선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심마니를 보면 이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라는 표현 또한 이런 풍의 글을 마칠 때 행하는 상투적 수사이다.

여기에 지증왕 이후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화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태면 견우노옹은 특별한 권능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곳 지리에 밝은 그저 평범한 농부이다. 평범한 농부가 수로부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여 절벽에 올라 꽃을 따다가 수로부인에게 바친 것이다.

견우는 절벽 지리 밝은 필부

‘붉은 바위가에’란 ‘성덕왕대의 어느 봄날 성소인 강릉으로 가는 길목인 동해변,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어느 절벽 위’를 뜻한다.

화창한 봄날 동해변의 한 촌로가 귀족의 부인이자 미모인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쳐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아무 거리낌 없이 터져 나올 수 없다. 아무리 수로부인이 원하던 꽃이라지만 나이나 신분상의 격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견우노옹의 마음이야 수로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수로부인이 거부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행한 자신의 행위는 한갓 웃음거리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은 이런 맥락을 반영한 것이다.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는, 이런 격차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을 받아달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로써 노옹은 미의 화신인 수로와 만남을 이루고, 수로는 수로대로 미의 총화인 꽃과 만난다.

이때 견우노옹은 신체미에 대한 존경심을 예술과 종교로까지 승화시켰던 당대 신라인의 전형이다. 신라인의 미인, 미남에 대한 관심은 각별했다. 원래 미모가 탁월한 여성을 화랑으로 삼았다가 이들이 서로 질투를 하자 남자로 바꾸었고 그 후에도 용모가 빼어난 이를 화랑에 추대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를 숭앙하였다. 득오가 부산성에 갇혀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김유신에 버금가는 통일 전쟁의 영웅이었던 죽지랑의 무술과 용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런 미감을 가진 신라인 가운데 하나인 노옹이기에 미인을 보고 이끌리는 것은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기에 노옹은 자신이 우러르는 존재가 원하는 꽃을 꺾어 노래를 부르며 바쳤던 것이다. 절벽 위 꽃을 원한 수로부인은 자신이 미의 화신이기도 하지만 더 높은 미를 지향하는 인물이다. 소가 노동과 생활을 대표한다면, 진달래 꽃은 미를 상징한다. 소를 놓고 꽃을 꺾음은 노동보다 미를 더 중요한 가치로 여김을 뜻한다. 시골의 촌로가 그리 할 정도로 신라인은 높은 탐미심을 가졌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미의 극치인 석굴암과 미륵반가상, 남산의 불상들을 빚어낸 것이다.

신체미 승화시킨 신라의 심안

‘꽃을 바치오리다’란 말을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가 아니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해독할 경우 헌화가의 의미는 ‘신분과 처지를 떠나 승화된 지고한 사랑’이다. 시골에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강릉 태수의 아름다운 부인을, 그것도 이미 노쇠한 늙은이가 사랑한다는 것은 불경이자 망령이다. 그러나 견우노옹은 그런 벽을 넘어 꽃을 꺾어 바치고 연정이 함뿍 담긴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수로가 신분을 내세워, 노인의 늙고 추한 모습을 꺼려 이를 거부하였다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로는 노인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굳이 살을 섞어야 사랑의 완성인가? 둘은 그날 지극히 승화된 ‘플라토닉 러브’를 이룬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성덕왕이 오대산에 화엄만다라를 조성한 당시의 맥락을 대입하면, 이 노래는 사랑노래나 신라인의 탐미심을 형상화한 노래라기보다 화엄의 이상을 구현한 노래다.  〈다음 호에 계속〉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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