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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삶을 가르치는 은자들』
피터 프랜스 지음 / 생각의 나무

저자 피터 프랜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를 벗어나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령에 대한 충고를 끊임없이, 그리고 열렬히 요구받아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은자들은 그들의 금욕적인 삶이나 영성으로만이 아니라 속세의 이치에 대한 통찰력으로도 위대한 명성을 쌓아왔다.(…) 은자들은 사람들 틈에 끼여 사는 우리를 위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의 순위를 재조정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독한 삶에서 얻은 과실까지 명백히 보여줄 수 있다.”

책에서는 동서고금의 여러 은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러시아 정교회의 스타레츠들이었습니다. 스타레츠는 영적인 아버지를 가리키는 러시아말인데 레오니드(1789-1841), 마카리우스(1788-1860), 암브로즈(1812-1891) 세 명의 스타레츠가 가장 위대하였습니다.

거의 동시대를 살다간 이들의 삶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난, 기도, 노동,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침묵과 절제였습니다. 새벽 2, 3시에 딱딱한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절제된 음식으로 허기를 달랜 뒤에 태양이 부드럽게 세상을 쓰다듬기 전부터 몰려드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하소연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쉬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보내온 산더미 같은 상담편지에 답장을 씁니다. 사람들의 하소연이 이어질 때라도 그들은 마음이 평정과 균형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손으로는 간단한 노동을 쉬지 않습니다. 저녁이 되면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이끌고 종일 비워두었던 그들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기도와 묵상을 마친 뒤 고요히 잠에 빠져 들어갑니다.

솔직히 이것은 지극히 대중 속의 삶입니다. 하지만 은자들은 수 십 년의 고독한 은둔과 자기수련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대중 속에 섞여 있을 때 자신들의 결점을 더 분명하게 발견하였고 그 결점을 치유하기 위해 대중 속에서도 기도하고 명상하였습니다. 제정러시아가 심하게 요동치던 시절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대문호들이 스타레츠를 방문하여 그들로부터 메마른 정신의 밭에 감로를 얻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는 명작들을 완성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참 열심히도 세상사는 지혜를 출가자에게 묻습니다. 세속을 떠난 삶이 오히려 세속을 더 환히 꿰뚫어보는 혜안을 길러주었기 때문일까요? 아줌마 아저씨들이 쏟아내는 땀내 나는 세속 문제를 열심히 풀어주는 법보신문의 법륜스님 칼럼을 보면서 나는 ‘온전히 세간적인 것도 온전히 출세간적인 것도 없다’는 불이법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서 가지런하게 삶의 질서를 추구하는 이가 있고, 암자와 토굴이 아름다운 이유는 쪽문을 열어놓고 세속의 여덟 가지 바람(이익과 손해, 명예와 비난, 칭찬과 비방, 즐거움과 괴로움)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이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람은 은자의 토굴에서 장미를 꽃피우는 훈풍으로 바뀌어 세상을 향해 부드럽게 불어올 것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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