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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빼앗긴 아프리카의 눈물

기자명 법보신문

『카리우키의 눈물』메자 무왕기 / 다른

표지에 그려진 새카만 아프리카 소년의 그림은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피어난 흑인 소년과 백인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라고 표지에 쓰여 있어서 나는 순수한 우정이야기를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덮은 지금, 느닷없이 세뇌(洗腦, brainwashing)라는 단어가 이리도 깊이 내게 파고들 줄은 몰랐습니다. 1800년대 말 아프리카 땅을 야금야금 차지하고 들어간 영국이 1963년 케냐에서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그들이 케냐 사람들의 땅과 물과 가족과 정서와 정신을 어떻게 수탈하고 세탁하였는지를 이 소박한 청소년용 소설은 낱낱 고발하고 있습니다.

케냐의 가장 비옥한 땅을 영국인들이 빼앗아 백인고원(White Highland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나는 모든 농작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초원을 유유히 흐르는 강도, 강에 사는 물고기도 백인들의 것인지라 케냐 사람들에게는 낚시질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케냐 사람들은 백인 농장주의 땅에 기생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고 버러지만도 못한 목숨인데 그나마 백인들이 불쌍하게 여겨 밀가루라도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식민지가 되어버린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처음부터 노예로 태어난 운명에 대해 억울해하지도 못합니다. 세뇌가 되기 때문입니다.

폭력에 무릎을 꿇은 어른들은 백인들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무력감을 느낀 나머지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백인들을 향해 아주 커다란 권력을 막연히 감지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신비와 경외의 존재로 받아들이게까지 됩니다. 가정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성당에서 아이들은 세뇌당합니다.

‘백인들의 파란 눈은 어둠 속에서도 만물을 환히 볼 수 있고 흑인들의 마음까지도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니 감히 백인들에게 반항하려 한다면 그건 죽음을 자초한 일이다, 백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백인들은 예수님과 천사와 성인들과 사촌지간이고 죽으면 전부 천당으로 가게 되어 있다….’

어른들도 점차 자신들이 그 대륙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 땅, 이 초원, 이 농장, 이 강물의 주인은 처음부터 백인이었다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주인공 흑인 소년 카리우키는 백인 농장주의 손자 나이젤과 사귀면서 백인도 자신과 다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지만 여전히 세상은 백인들의 앞마당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세뇌당하고 살아왔는지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친형을 잃고 난 뒤였습니다. 소설은 형을 잃은 소년의 길고긴 눈물과 홍수가 지는 숲의 정경을 묘사하며 끝이 납니다.

무법자들이 손을 털고 나간 뒤 그 대륙에서 날아오는 소식들은 혼란과 부패와 빈곤과 갈등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소년이 더 이상 서러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되찾은 땅 아프리카의 정신이 살아 있는 웅혼한 초원의 노래를 불러 세상을 울렸으면 좋겠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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