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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자비 현장서 신뢰 쌓아야”

기자명 법보신문

[신년대담] 종교간 화해·상생 해법은

법    륜   “신념 또한 타파해야 할 또 다른 相”

박종화   “대화 통해 서로의 장점 수용해야”

김홍진   “종교는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세력”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11월 현재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53.1%다. 10년 전인 1995년에 비해 정확히 10.5%가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종교 인구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교 인구가 늘어난 만큼 세상이 평화로워지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 간의 반목과 질시가 고조되고 있고, 선교와 포교의 현장에서 충돌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종교간 화해와 상생을 주제로 신년특집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본지 남배현 차장의 사회로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경동 교회 박종화 목사, 문정동 성당 김홍진 신부가 참석했다.  편집자 주

사회자 법륜 스님, 박종화 목사님, 김홍진 신부님은 종교간대화 모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직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진년 새해에는 종교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과 상생의 분위기가 확산됐으면 하는데.
김홍진 신부 2006년 창립한 화해상생마당을 통해 법륜 스님을 처음 알게 됐다. 부처님오신날 사찰을 방문한 것도 스님의 권유를 통해서였다. 비록 처음 방문하는 사찰이었지만 온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마음속에 남아있던 불교에 대한 껄끄러움을 모두 털어버릴 수 있었다. 신심 깊은 불자들을 접하면서 종교란 형식만 다를 뿐 추구하는 바는 같다는 작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서로의 종교를 경험하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지론을 갖게 됐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진실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만나서 경험하고 대화하면 상대의 종교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종교를 마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종교간 상생과 화해는 절로 오는 것이다.
사회자 먼저 종교간 대화의 역사에 대해 잠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박종화 목사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뿌리이면서도 오랜 세월 반목을 거듭했다. 그러다 지난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이 개신교를 형제 그리스도 교단이라고 선언하면서 손을 내민 것이 두 종교 사이의 해빙 무드로 이어졌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그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만남을 가졌고, 부활절에 연합예배를 열기도 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분이 바로 故 강원룡 목사님이다. 강 목사님은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통해 한국 내의 종교간 대화를 시작했고, 그 폭을 꾸준히 확대해 모든 종교간 만남으로 확대했다. 강 목사님은 아카데미 내에 종교간 대화를 위한 정식 프로그램을 만들어 종교간 이해와 대화를 주선했다. 또 이런 노력들을 좀 더 확대한 것이 1986년 발족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이다. KCRP는 사람과 인권, 평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간화해와 협력을 주제로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회자 본론으로 돌아가 종교간 대화가 왜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박종화 목사 인권도, 평화도, 화해도 모두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폭력과 힘이 아닌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만 갈등을 해소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종교간 대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들도 많다. 신앙은 곧 신념과 믿음의 문제이므로 쉽게 소통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화가 종교적인 교리를 바탕으로 한 철학적인 논쟁으로 번지면 우리가 추구하는 상생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따라서 대화의 주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종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접근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법륜 스님 종교를 올바른 삶을 살기위한 인생의 지표로 생각하지 않고 궁극, 또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믿고 목숨까지 기꺼이 내 놔야한다고 강변한다. 일면 맞는 말 같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상대를 포용하고 대화하고 자비롭게 대하라고 가르쳤다. 내 것만이 옳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의 종교는 자신의 교주와 교리만이 옳고 진리라는 신념이 너무도 강해 서로 공생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불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신념 또한 하나의 상(相)에 불과할 뿐이다. 상에서 벗어나야 한다.좬금강경좭에서도 상을 타파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나. 교류는 자신의 것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홍진 신부 옛 스승들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종교를 만들지 않았다. 지금의 종교는 스승들의 가르침이 환경, 역사와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과연 옛 스승들의 참뜻이 진실하게 전해지고 있느냐는 끊임없이 살펴야 할 문제다. 오늘날 각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나의 것만이 옳다는 신념은 대화를 통해 해결 가능한 일임에도 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종교간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대화 할 수 있는 환경이 아직 우리 사회에 조성되지 않았다.
저는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이웃 종교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사회복지라는 공동의 주제와 대화의 틀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신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서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사회자 개신교의 경우 종교간 만남에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불교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목사님들의 경우 이단으로 몰려 곤혹을 치른 경우도 있다. 박 목사님은 이단이라 비판 받은 적은 없나.
박종화 목사 고백하건데 저도 설교 시간에 불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웃음) 신념과 믿음의 측면에서 불교의 가르침은 개신교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는 그 다름을 거부가 아닌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교리와 가르침을 접하면서 내가 왜 개신교인이어야 하는지가 더욱 명확해 지기 때문이다. 다름을 통해 나의 것을 재인식할 수 있다는 점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대화란 자기 것을 확신하게 만들면서도 또한 남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키워준다. 모든 인간은 부분이지 전부일 수 없다. 인간 사회는 이러한 부분이 모여 온전한 하나를 만들 수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종교마다 교리가 다르고, 개신교 내에서도 교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개신교 내부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이단으로 취급한다. 단지 불교나 가톨릭과 교류를 한다고 이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불교와 가톨릭뿐만 아니라 무슬림과도 교류한다. 신념은 자기 나름대로 절대적일 수 있으나 크게 보면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김홍진 신부 세계는 2500년간 종교적 다름을 이유로 수많은 전쟁을 벌여왔다. 종교인들이 진실로 해야 할 일은 분열과 반목과 분노를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를 제시하는 일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종교계는 환경과 인권, 복지 분야에서 함께 대화하고 협력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다양한 색깔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때 이해의 폭은 넓어질 수 있다.
박종화 목사 서양을 비롯해서 국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의 종교간 대화는 다른 소수 종교에 대한 이해를 위한 대화일 뿐이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인 우리의 경우 종교간 대화는 서로간의 공존을 위한 대화다. 따라서 우리의 종교간 대화는 일상의 삶이 돼야 한다. 종교 집단의 교리를 주제로 대화할 것이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종교인들이 만나고 협력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또한 높은 수준의 결과를 도출 할 수 있다. 종교간 대화는 타 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안주를 반성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사회자 참석하신 세 분의 경우 종교간 상생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찰이 불에 타고 불두가 잘리는 일이 있었고, 사찰이 무너지라는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박종화 목사 먼저 개신교인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 이런 행위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러한 광기어린 극단은 종교뿐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여러 곳에 존재한다. 물론 유독 종교집단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에게는 타협이란 존재할 수 없고, 그 자체를 죄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개신교인이라면 이웃 종교인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다. 다양성을 인정할 때 확신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럼에도 개신교인들이 다른 종교인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은 개종의 목적이 아닌 대화는 만남이 아니라는 극단적인 생각 때문이다. 자신의 귀는 닫은 채 무조건 예수 믿을 것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미 대화가 아니라 폭력이다.
법륜 스님 종교인들이 우리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한반도 평화, 환경, 소외된 이웃에 대한 자비행 등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가지고 만나 함께 일을 하면 종교의 다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종교간 대화도 이런 일들 속에서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런 협력의 노력 없이 대화라는 주제 아래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주제로 대화 한다면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서로간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런 식의 대화는 내 종교의 교리가 옳고 상대편은 그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전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지키고 이기려는 의도는 대화를 어렵게 하고,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종교간 대화는 상대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종교 자체는 신성한 것이지만 다른 종교인이나 비종교인들에겐 하나의 문화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종교간 대화에 앞서 상대 종교 교리에 대해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보다 진솔한 대화가 가능하다.
김홍진 신부 동일한 나무만을 심는다면 결코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없다.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면 모든 종교는 인간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각 나라별 주교회의에 종교간 대화의 틀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있다. 여러 종교가 우리 생활 속에 일어나는 주제와 현상에 대해 토론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해 함께 노력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 질 것이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은 역시 각 종교들이 서로가 쳐 놓은 도그마의 장벽을 허물고 대화의 장으로 나서는 것이다.
사회자 종교별 다양성을 인정하고 갈등을 넘어 상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접근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법륜 스님 종교 지도자들이 신도들에게 각 종교의 행사 때마다 가서 축하해 주라고 가르쳤으면 한다. 남북의 분단, 지역 갈등, 양극화 등으로 가뜩이나 분열된 한국사회에서 종교마저 분란의 원인이 돼서는 안 된다. 화계사는 매년 지역 교회, 성당과 함께 바자회를 열어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정토회의 경우 박종화 목사님의 소개로 개신교계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생활시설 애광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화의 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 외국에 비해 종교간 접촉의 기회가 다양하다. 외국의 경우 종교는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 가족 간에도 종교가 다르지 않나.
김홍진 신부 종교간 대화에는 반드시 주제가 있어야 한다. 2007년 해외 입양아들을 모국으로 초청하는 행사를 마련했는데 한국을 방문해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이구동성, 사찰을 꼽았다. 사찰에서의 하룻밤은 기독교 국가에서 온 아이들에게 자기 종교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사회자 티베트 강원에서는 예비 스님들에게 서양철학과 서양종교학을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한국 종교계에도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박종화 목사 우리 사회는 사랑과 봉사가 필요한 곳이 많다. 애광원의 경우 개신교 장로가 세웠지만 정토회의 지원에 감사하고 있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데 종교를 초월했으면 한다. 이렇게 된다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봉사공동체가 확산될 것이다. 개신교 신자라도 문화적 차원에서 사찰의 예불에 동참할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은 해당 종교에 대한 최대의 예의이자 종교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해 종교계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도 종교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법륜 스님 우리만의 독특한 종교 현상을 꼽을 때 문상 문화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문상을 가면 절을 할 수 있도록 돗자리를 깔아놓고 한편으로 예배를 위해 꽃을 갖춰 놓고 있다. 망자의 종교와 상관없이 문상을 온 사람들을 배려한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이다.
박종화 목사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마저 거부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이에 대해 개신교의 반성이 필요하다. 서양, 그 중에서도 미국식 개신교 문화가 직접 한국에 들어오면서 특히 장례에 대한 문화적 충돌이 발생했다. 문화와 신앙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사회자 신앙에 대한 유연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법륜 스님 유연한 해석 보다는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말씀일 것이다. 불교의 경우 계율대로라면 여성과 악수를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야 어떻게 현실에 살아갈 수 있겠나.
김홍진 신부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현지인들이 나에게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합장은 불교의 의식이 아닌 동양의 문화로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70년대 유신철폐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 활동한 적이 있다. 이미 대화를 넘어 함께 행동한 것이다. 앞으로는 환경, 남북 등의 문제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분열된 한국 사회를 통합하는 데에도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사회자 그렇다면 종교간 상생을 통해 어떤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김홍진 신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 없이는 남북문제도 동서분열도 해결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라 극단주의를 극복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종교는 우리사회 최후의 양심세력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법륜 스님 북한 주민 지원, 환경문제 동참, 제3세계 구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은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북한돕기, 환경문제, 제3세계 지원 등을 통해 만난 이웃 종교인들은 상대의 종교를 문제 삼지 않았고, 친구로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다. 종교는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화합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새 대통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대통령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만의 대표가 아닌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 왔던 하지 않았던 상관없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상 무엇보다 사회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그에 걸 맞는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남과 북, 보수와 진보, 동서의 갈등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종교계 역시 대통령이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되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박종화 목사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종교계가 미친 영향은 사실 미비하다. 그렇지만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는 종교인들이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민심은 살림을 윤택하게 해 줄 사람을 선택했지만 일부 정치화된 성직자들은 마치 교세를 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처럼 악용했다. 종교는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가 국가 경영자를 뽑는 것이지 목사나 장로를 뽑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종교는 순수하고 순박해야 한다.
법륜 스님 종교가 지나치게 세속화돼 정치와 손을 잡는 것도 위험하지만 세상과의 소통을 완전히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하는 것도 종교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세상을 외면하는 종교 집단에서는 이조차 정치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권력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또 사회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해결해가기 위해서는 때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종교가 어떤 식으로 세속과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할 종교가 아예 짜서 못 먹게 하거나, 소금을 넣지 않아 상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 양 극단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자 종교간 상생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종교인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종화 목사 무엇보다 대통령이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먼저 종교계에 도덕적 실체가 돼 줄 것을 요구하고 종교와 권력과 유착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종교 역시 권력과 야합해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화합의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법륜 스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현재 남북관계를 계승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는 대북관을 통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제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된 만큼 보수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진보의 주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전 정부에 대한 다른 모든 것을 비판해도 남북관계 만큼은 계승해 갔으면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통합을 이룬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세로 국정에 임하길 바란다.
김홍진 신부 도덕성을 중시하는 경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황금만능주의, 물질주의 등 자본을 최우선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자본에 좌우되면서 윤리와 도덕이 크게 훼손됐다.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도덕과 윤리는 무시돼도 좋은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선진국은 무엇보다 윤리와 생명, 도덕과 가치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 파이를 크게 만드는 일 만큼이나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천민자본주의적 사고가 이 사회에 만연하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돼 사회 이탈 현상은 크게 늘어날 것이고, 국민소득 3만 불, 4만 불 시대가 도래해도 한국은 여전히 살기 힘든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사회자 보편적 가치와 공동선 실현을 위한 공동의 장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간 상생을 위한 발원을 부탁드린다.
법륜 스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 정착을 위해 숨 가쁘게 뛰어오다 보니 늘 내 문제에 국한돼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다. 한국인들의 민족성이나 혈통과 상관없이 살아온 환경이 그랬다. 이제 우리 사회도 지구촌 전체를 보는 눈으로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남북관계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2008년에는 젊은 세대가 세계적 안목으로 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특히 종교계가 서로 협력해서 젊은 세대의 안목을 넓히는 일에 중심적 역할을 했으면 한다.
김홍진 신부 새로운 정부가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정책을 시행했으면 한다. 정직은 종교적 기준과 사회적 기준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서울 봉은사가 재정을 공개한 것처럼 종교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국가의 투명성을 견인할 계기를 제공했으면 한다.
박종화 목사 베품의 장소를 국내에서 국외로 과감하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온통 불만투성이다. 이 만큼 살게 됐으면 만족할 줄도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인색하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극빈층이 삶을 잠시라도 경험한 사람은 그처럼 불만을 토로할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종교계가 먼저 세계인들의 어려움을 살펴 그들을 살리는 활동에 적극 동참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인들의 마음을 크게 열고 먼저 서로간의 반목과 질시를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개신교, 가톨릭, 불교가 아닌 종교라는 큰 연대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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