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 법보신문
  • 승인 2008.01.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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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세상에 훅을 날리다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
마이크 마커시 지음 / 당대

“난 권투선수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워!”라는, 자아도취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두 주먹 말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흑인 청년 캐시어스 클레이가 겁도 없이 이런 말을 내뱉을 때, 근엄하고 ‘젠틀’한 백인남성들이 지배하던 1960년대 초반의 미국사회는 난감해 했습니다.

하지만 백인들의 미국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봤자 그 자는 노예의 후손이요, 검둥이 복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권투는 가진 것이 몸뚱이 뿐인 젊은이들이 돈과 명성을 거머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경기였습니다. 백인 도박사들은 가난한 흑인들을 링 위로 불러내서 처절한 싸움을 붙이고 자기들의 주머니를 불려갔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라도 백인들의 취향과 기호에 어긋나거나 성깔을 부리면 폐인으로 전락해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시절, 캐시어스 클레이는 그런 백인들에게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였습니다. 도대체 백인들을 무서워할 줄 몰랐습니다.

1964년 2월25일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과 난타전을 벌이다가 7회 공이 울렸음에도 그가 링 안으로 나오지 못하자 클레이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모두 증인이 되시오! 내가 가장 위대한 자요!”
챔피언이 되자마자 그가 터뜨린 말은 ‘나는 기독교도가 아닙니다. 알라를 믿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였습니다. 그는 블랙무슬림단체인 이슬람네이션에 가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눈엣가시 같았던 그를 길들일 길은 오직 하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베트남에 보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는 검둥이라고 놀려대고 차별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던 국가가 이번에는 나라를 위해 국민의 의무를 다하라고 전쟁터로 내보내려 하자 클레이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난 베트콩이랑 싸울 일이 없어요.”
‘그 나라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난 모르겠고, 내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은 그곳 사람들한테 총질을 해댈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었지만 그의 참전거부는 미국 대륙에서 소수와 주변인이 ‘자기 됨’의 길을 찾고 제 목소리를 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전역에서 벌어졌고 수많은 인사들이 속속 그 대열에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행동한 반면 클레이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였고 링 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FBI의 감시와 도청 아래 3년이 넘는 핍박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는 흑인으로서의 자존심과 무슬림으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 챔피언 벨트를 되찾고야 만 클레이. 세월은 흘러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덜덜 떠는 손으로 성화를 들어 올려 성화대에 불을 붙이려 애를 쓴 파킨슨병 환자 클레이.

오늘날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전 세계인들은 오직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만 그를 기억합니다. 알리는 저항하는 자들의 살아있는 영웅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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