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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당진 정토사 주지 선오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8.01.22 10:04
  • 댓글 0

이웃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

“스님, 스님. 이것 좀 보세요. 별일이네요.”
우리 절 한 보살님이 내 앞에 불쑥 신문을 내밀었다. 「법보신문」이었다. 평소에는 비교적 꼼꼼히 신문을 보는 편이지만, 요 며칠 많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번 주에 도착한 신문을 이제껏 보지 못했던 터라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보살님이 펼쳐 보인 지면에 서둘러 눈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문 지면에 ‘성모 마리아’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의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것이었다. 신도 교육과 포교를 주목적의 하나로 삼고 있는 불교계 전문 신문에서 이웃 종교의 ‘성화’로 불리는 그림이 보이다니 보살님 말대로 ‘별일’이었다.

지면을 펼쳐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니 비교종교학자로 이름 높은 오강남 교수님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여러 종교들의 시원이 된 교조들에 대해 설명해주는 새로운 연재였다. 그 첫 회로 기독교의 교조인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불교 전문지에서 이웃 종교에 대해 배우는 연재가 실렸으니 낯설 법도 하다.

하지만 몇 줄 넘기기도 전에 이런 생각은 곧 바뀌었다. 종교계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자리에서 종교간 화합과 상생을 외쳤는가. 종교간 대립이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외국의 예를 들어 보이며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호소했지만, 정작 종교간 화합과 상생을 위해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불교계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 중단 없이 종교간 화합은 요원한 일이고 사찰에 대한 방화나 훼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종교간 상생은 불가능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남의 탓만 하고 있는 것 역시 불자다운 태도는 분명 아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먼저 실천하는 것이 참다운 불자의 모습인 만큼 종교간 화합과 상생을 위해서 이웃 종교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는 열린 마음을 먼저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야 진정한 불자인 것이다.

우리 절이 자리하고 있는 충청남도 당진 역시 전국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기독교의 위세가 센 지역이다. 사찰이나 불교계의 활동이나 행사에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보이지 않게 훼방을 놓거나 저지하려는 일도 많고 그들의 선교는 집요하기까지 해 간혹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껏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으며 왜 저렇게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저들과 부딪히지 않을까하며 피할 방법을 찾거나 어떻게 하면 저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하고 맞불을 놓을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들 종교의 역사와 교리, 그리고 교조의 가르침이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발전하고 정착하였는지에 대해 이해한다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조금은 보였을 텐데 말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불교를 배우기 위해 불교대학을 다닌다는 목사님 이야기나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있는 신부님 등에 대한 이야기를 그간 간간히 접해오면서도 왜 지금껏 우리는 그들의 종교에 대해 배우려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시에 불교계도 이제는 이웃 종교에 대해 연구하고 그들과의 상생에 대해 모색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불자들이 이웃 종교인들과의 교리 대화에서 말문이 막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웃 종교인들이 비록 얄팍한 수준에 불과하더라도 불교의 교리나 가르침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종교가 더욱 우수함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불자들은 그들 종교의 가르침과 불교의 가르침을 비교할 만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면을 가득 채운 ‘성화’를 보면서 올해에는 불자들도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다양한 종교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진 포교 인재 양성의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종교간 화합과 상생의 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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