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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법신이 허공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따뜻한 남녘 바다에 볼을 베어갈듯 칼바람이 몰아친다. 온몸에는 청아한 기운이 뼛속 깊이 흐르고 물결은 끝없는 설원처럼 은빛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금광명경』에서는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물속의 달처럼 인연을 따라서 응한다고 했다. 산짐승들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가고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 속에서도 설원과 꽁꽁 얼어붙은 강에서는 겨울 축제가 한창이다. 이 모든 것이 법신이 인연을 따라서 울고 웃으며 차별 없이 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법신이 허공에 두루 펼쳐져 있으며 허공 속에 법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견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법신이 곧 허공’이라는 사실을 투철하게 알지 못한 까닭에 자유롭게 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허공을 기준으로 수행을 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없고 모양이 없어 생멸이 없는 허공이 만물을 길러내는 덕을 본받고자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허공은 무정물이며 신령스런 앎이 없어 법을 설하거나 듣는 것은 오직 눈앞에서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는 공적영지한 허공과 같은 마음일 뿐이다.

그러므로 허공에 기대어 마음을 비운다고 공부를 삼으면 단멸상에 떨어져 마음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삶이 재미없다는 허무한 생각을 내게 된다. 또한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서 법신이 실재한다고 집착하여 허공이 법신에서 나왔다는 견해를 지으면 차별심으로 말미암아 눈앞에서 대상을 만나면 활달하게 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허공이 실재한다고 확정하여 말한다거나 법신이 실재한다는 견해를 짓지 않는다면 법신이 곧 허공이다.

보통 사람들은 대상에 집착하고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에 집착을 한다. 그러나 대상을 벗어나기는 쉬워도 마음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공에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마음과 대상을 모두 벗어나면 공적영지가 바로 마음이다. 만약 생멸하는 의식을 마음으로 착각한다면 진리의 길에서 멀어질 것이다.

마음은 생멸이 없고 거래가 없어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로 부터 꿈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갖추고 있는 열반의 성품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것이 불법의 진정한 안목이기 때문이다. 뒤뜰 매화나무 가지에는 벌써 눈곱만큼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뼛속 깊이 추위가 사무칠수록 향기는 점점 깊어만 갈 것이다. 생사의 일이 급하고 큰 것이니 한바탕 화두를 들고 일대사를 치러내야 한다고 했던 황벽선사의 말씀이 큰 경책으로 다가온다.
허공은 손대면 쨍그렁 깨어질듯 청명하게 깨어 있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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