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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일상의 일이 정도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배움의 목적은 대학 아닌 삶의 방편 아는 것
교육정책도 배우는 사람 입장서 기준 세워야

‘사람’이란 말의 어원적 풀이가 무엇일까. ‘살다’의 명사형이 아닐까. 살아감의 일상적 일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 일상의 일을 제쳐 놓고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태어남으로 인하여 나의 삶이 형성되는 것이요, 이 나의 삶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의 조직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가장 가까이의 가족 구조부터가 나의 존재로 인하여 서로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 어떤 조직을 전제해 놓고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질서의 기본이 되는 윤리 자체가 살아감의 일상적 순서이지, 삶을 제쳐 놓고 고상한 이론의 도입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살이의 삶이 되어진 그대로의 자연이지 인위적 꾸밈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살이의 관계가 넓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의 관계가 얽히어 어떤 조직이 이루어져
가고, 그 조직의 확대된 공간을 사회요 국가라 하며, 가시적 활동 영역의 극대적 공간을 세계라 할 것이고, 가상적 공간의 극대화가 우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것이다. 이를 삼천대천세계라 한 불교의 공간관에 항시 머리가 숙여진다.

일정한 사회적 구조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나름의 틀을 갖추려는 것이 사람살이의 보다 큰 조직이요 또한 어울릴 수 있는 한계적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을 설정해 놓고 이를 이끌어갈 중심적 인물이 있어 나라의 덩이살림이 굴러 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큰 덩이살림을 맡아야 할 사람을 정해 놓았고, 정해진 우두머리 영감은 큰 덩이의 틀을 짜느라 분주하다. 날마다 그려지는 밑그림을 알리고 알려지는 밑그림에 온 백성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때로는 희망의 밝은 미소도 지어지나, 때로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 게제에 이 소시민이 걱정되는 것은 의욕이 앞서다 보니 사람살이의 일상적 일에 벗어나는 틀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이다.

교육이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이 말은 가르침이라는 뜻이고 이 가르침은 배움이 있어 존재하는 것인데, 이 제도를 말하게 되면 항시 가르치는 쪽에다 시선을 두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가르치기 이전에 배움이 전제되어야 할 것 아닌가. 배움의 밑바탕에서부터 배우려는 이의 의욕을 더듬어가야 할 터인데, 가르침에다 기준을 두어서 가르침의 맨 위 층인 대학에다 기준을 두고는 더듬어 내려오니 배우려는 학생과는 동떨어진 어른들의 구조물이 되어온 것이 반세기가 넘는 교육정책이다. 밑에서부터 쌓아 올라가는 발상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더듬어 내려오는 발상이다 보니 ‘역삼각형’의 구조물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배움의 틀을 대학에다 놓고 이렇다 저렇다 하고 있으니, 배움의 목적이 대학인가. 배움은 궁극적으로 삶의 방편을 알자는 것이 아닌가. 삶의 방편을 찾으려는 가장 낮은 어린이의 배움의 욕구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살펴, 커가는 과정을 순리적으로 더듬어 올라가면 대학의 배움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해답도 나올 것이고, 이 해답에서 대학은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하는 길이 보일 것이다.

교육부라는 이름을 바꾼다 하니 기왕 바꾸려면 학습부라 함이 옳겠다. 가르치는 어른에게 기준을 두지 말고 배우는 학생에게 기준을 둠이 옳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가 스스로 세워가는 기준이라야 하지, 왜 가르치려는 이의 강요로 인위적 길을 만드는가. 이것이 순리이고, 일상적 삶의 사람살이다. 배움은 사람살이의 길을 알자는 것이니, 그 주체는 배우려는 학생이다. 목이 마르면 물 찾고 배고프면 밥 찾는 것이 삶이다.

여기서 ‘가장 신통한 일이 물 긷고 땔감 나르는 일이다.’라고 설파한 방거사(龐居士, 이름 蘊)의 말이 새삼 진리임을 깨닫겠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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