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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세금 안 뜯기고 재산 물려주려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깁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요? 에이, 아닙니다. 그건 옛날식입니다. 지금은 재산을 남겨야 합니다. 두둑한 재산을 남겨놓고 죽어야 자식들에게 ‘죄인’이 되지 않는 것이 요즘입니다. 사방 어디를 가보아도 어르신들끼리 나누는 이런 생존전략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임자, 혹시라도 벌써 재산을 자식들한테 다 나눠준 거야? 절대 그러지 말어. 죽을 때까지 꼭 쥐고 있어. 그래야 사람 대접받거든.”

그런데 재산을 일찍이 나눠준 뒤에 자식들에게 푸대접을 받던 노인이 부처님에게 하소연한 이야기가 경전에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이 오늘의 문제만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은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부모에게서 한 몫을 챙겨내려 용을 씁니다.

‘재산 물려주시면 대신 저희가 잘 모실 게요’라는 꼬임에 넘어간 부모들이 거리에 나앉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재산을 물려주지 않다가 흉한 일을 당하는 부모들도 신문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립니다. 아무튼 재산상속을 사이에 두고 부모와 자식 간에, 혹은 자식들끼리 벌이는 신경전은 제법 심각합니다.

삼남매가 있었습니다.
막내 여동생네가 좀 기울었지만 넉넉한 오빠와 언니가 표 나지 않게 도와주어서 삼남매는 의좋게 잘 지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부인 앞으로는 아파트 한 채와 통장 하나를, 그리고 남은 재산을 정리해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아무래도 못사는 막내가 마음에 걸렸던지 위의 형제들보다 조금 더 챙겨주었습니다.

몇 년 뒤에는 부인마저 암에 걸렸습니다. 몇 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서 부인은 걱정이 앞섭니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재산들을 자식들에게 언제 어떻게 상속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뒤에 의좋던 형제들의 사이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막내 동생이 재산을 더 물려받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평소 아낌없이 도와주던 형제들이 질시하더니 결국 서로 얼굴을 보지 않게까지 되었습니다.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소설집 / 문학과지성사

생전에 현금을 자식들에게 나눠줘야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뜯길 텐데 하는 조바심에다, 골고루 나눠주고 싶기도 하고, 쳐지는 자식에게 한 푼이라도 더 몰래 쥐어주고 싶기도 한 그녀는 사연 많은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명쾌하게 답을 얻습니다.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심을 못 버리는 사람이 유서를 쓰는 법이요, 이 세상에서 얻은 재산, 이 세상의 법이 어련히 처리를 잘해줄 텐데 죽으면서까지 참견하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금으로 엄청나게 뜯기고 아이들한테 제대로 차례가 갈 것 같냐는 반문에 ‘법이 정한 대로 뜯겨야지 어쩌겠어.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군가 세금을 낸 덕분에 우리가 그 혜택도 받고 살지 않았니’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느 사이 70대 중반에 접어든 소설가 박완서씨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속에 담긴 『대범한 밥상』의 줄거리입니다. 재산분배라는 막중한 숙제를 풀어야만 하는 어르신들은 이런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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