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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떤 통일'을 원하고 있나

어떤 방식의 통일이건 모든 게 좋은 것일까? 일찌기 냉전체제의 적막을 뚫고 천둥번개처럼 내리쳤던 '74 남북공동성명'(1972)의 충격과 감격 앞에서 장준하는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고 부르짖었다.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 앞에 갈라진 민족, 둘로 나누어진 자기를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이상의 명제는 없다고 선언했다. 통일지상주의는 여기서 싹텄다. 그런데 이 통일지상주의는 어떤 통일을, 통일조국이 어떤 모습의 사회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관심이 없었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독일통일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을 때 우리도 금새 통일이 될 것 같은 열망에 들떴다. 체제경쟁은 끝났다. 이제 우리는 북한 동포들을 음습한 독재체제로부터 빵과 자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자유민주체제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런데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어떠한가? 최근 동북아 국제정세의 변화 와중에 북한의 향방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개혁개방 조치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신의주 특구 선언은 '땅팔기' 아닌가, 더 이상 사회주의를 고집할 수 없어 시장 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경제개혁이라면 장차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 모두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바란다고 보기엔 터무니없는 생각일 것이다.

통일은 남북한이 하나되어 함께 사는 길이다. '하나' 된다는 것은 국기도 하나, 나라 이름도 하나, 대통령도 한 사람, 이런 식으로 법제도 등이 하나로 통합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사실 이는 무척 어렵고 위험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통일을 바란다면 먼저 남북한 주민들의 꿈과 이상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독재와 북한식 사회주의를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남한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양측의 입장과 지향성은 상호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성공이 도덕적 우월 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남북한의 산술적 평균체제는 비현실적 관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통합의 토대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양측의 입장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체제경쟁은 사라져 버렸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을 돌아보는 자기절제력과 도덕적 통제력을 지녀야 할 이유도 사라져 버렸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전 지구를 휩쓸면서 자본을 위해 인간과 자연을 수탈하는 유일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대부분의 인류에게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새로운 차원의 이념일 뿐이다.

엄청난 경제력을 장악한 금융자본의 힘 앞에 전통적인 국가의 역할과 권능은 맥도 못 추고 점차 그들의 조력자로 전락하는 가운데, 중산층은 점점 더 몰락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를 소수의 부국(부자)과 대다수의 빈국(빈민)으로 양분시켰다. 빈곤의 심화와 그에 따른 인간성 상실은 전쟁과 야만성을 계속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이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들과 연관될 때 소수의 부국은 지구의 자원에 대한 무제한적 장악력을 확보하려 들고 그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언제나 갈등을 조성하고 전쟁을 꾸며낸다. 자본이 지배하는 21세기의 세계는 대개 이런 모습이다.

남북한 하나되어 함께 사는 통일은 이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 이외의 길은 없을까? 다시 물어보자. 통일이 과연 지상명령이며, 모든 통일은 선인가? 전쟁통일은 민족이 모두 망하는 길로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남북한은 서로 협의와 합의를 통해 하나되는 길밖에 없다. 통일이 선이 되기 위해서는 대다수 남북한 주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통일사회의 미래상을 발견해야 한다.
조민<통일연구원 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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