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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실크로드 견문기] 4.[끝]

기자명 법보신문

실크로드, 구법위해 목숨마저 던진 숭고한 성지

 

<사진설명>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불타는 산, '화염산'. 그 옛날 선지식들은 광막한 사막과 험준한 산맥을 넘어 구법을 위해 목숨마저 내던지며 인도로 향했다.(법보신문 자료사진)
대불사(大佛寺)는 가오창고성의 성장 안에 위치한 제법 규모가 큰 사원으로 『사기(史記)』에 의하면 현장법사가 이곳을 거쳐 인도를 향해 구법의 길을 재촉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현장의 강당(講堂)이었다는 원형 건물이 복원돼 있는데, 현장법사가 6개월간 머물면서 설법한 곳이라 한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사원의 규모가 당시로는 엄청난 크기였을 것이란 정도다. 인도와 시안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간 지점에 이렇게 큰 사원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이 길을 통한 불교 문물의 교류가 얼마나 왕성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나는 사막 가운데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가오창고성과 대불사의 유적을 보면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다시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옛날 화려했을 왕성(王城)의 영화며 수많은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정진하고 전법과 구법의 고된 몸을 달랬던 대가람의 영화는 온데간데없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으니 이것이 무상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분의 부처로 장엄된 천불동

<사진설명> 베제클리크 천불동 석굴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가오창고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화염산 북쪽의 암벽을 파서 만든 석실사원과 승려들이 수행하며 거처하던 비하라굴들로 이루어진 석실군을 가리킨다. 베제클리크 석굴은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 흐르는 무토우고우강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암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조성한 100여개의 석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석실사원은 가오창왕국의 국보무왕 때인 서기 559년경부터 약 3세기에 걸쳐 조성됐다.

14세기 말 이슬람교가 투루판 분지에 들어오면서 일어난 종교적인 충돌로 인해 석굴은 크게 파괴됐고, 그 후 독일, 영국, 러시아와 일본의 탐험가들에 의한 도굴이 자행돼 석굴은 다시 큰 손상을 입었고 많은 벽화와 불상이 뜯겨져 나갔다. 석굴을 돌아보면서 천 길 낭떠러지 위의 암벽을 뚫어 석실을 만들고, 그곳에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불화를 그려 넣은 선인들의 정성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벽화 위에 황토 흙을 발라 뭉개놓은 무슬림들의 소행과 몇 푼의 돈을 위해 불상과 벽화를 벗겨간 소위 탐험가라는 사람들의 편벽되고 탐욕 어린 소위에 분노를 느꼈다.

<사진설명> 화염산 기슭에 만들어진 불상과 조형물

이곳을 천불동이라 부르는 것은 석실사원의 천정에 천불상이 화려한 색채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벽화는 건조한 사막기후의 특성으로 아직도 빛이 크게 바래지 않아 당초의 화려함을 짐작하기에 충분했고, 마치 선인들의 절실한 구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천불동으로 향하는 계곡 입구 산기슭 평지에는 최근에 지어놓은 일종의 전시장이 서있다. 조금 더 들어서면 흙으로 빚어 만든 익살스런 모습의 손오공과 저팔계가 서있고, 그 옆으로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곳이 바로 『서유기』를 탄생시킨 설화의 본고장이다.

투루판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사막 가운데 위치해 있다. 그러나 사막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푸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태양을 맘껏 받아 싱그러운 갖가지 채소들이 풍성하다. 어디 그 뿐인가. 도로변에는 물길을 따라 맑은 물이 가득 흐른다. 알고 보니 천산산맥이 이고 있는 많은 눈들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고, 사람들은 이 땅속에 흐르는 그 풍부한 지하수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카레즈라 부르며 바로 그 카레즈 덕에 포도를 비롯한 갖가지 과수와 채소 농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현지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에는 역사상 삼대역사(三大役事)가 있는데 하나는 만리장성을 쌓은 일이고, 둘째는 사막인 투루판과 우룸치 지역에 카레즈를 만든 것이며, 셋째는 내륙운하를 건설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카레즈의 풍부한 물이 있어 생활에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지만, 그 옛날 지하수를 개발하고 땅속에 수로를 뚫어 지하수가 흐르게 하기까지 조상들이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한다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도처에 ‘절수’를 뜻하는 푯말이 붙어 있다.

사막 가운데 인공수로 카레즈

우룸치는 신지앙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로서, 투루판에서 천산산맥의 협곡을 가로질러 구얼반퉁구트사막 변두리에 위치한 천산북로의 한 거점도시이다. 지금은 투루판에서 그곳까지 고등급공로(高等級公路), 곧 국도인 고속도로가 나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리한 편이나, 옛날에는 광막한 사막과 험준한 천산산맥의 협곡을 타고 몇 날을 가야하는 길이었다. 우리 일행은 조반을 마치고 곧 버스 편으로 출발했다. 사막 길을 달려 우룸치까지 가는 길에 특이할 만한 곳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염호(鹽湖)요, 다른 하나는 풍차군(風車群)이다. 안내자가 “저기 염호가 보인다”고 해서 차창으로 쳐다보니 멀리 산 밑으로 호수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 둘레에는 눈이 잔뜩 쌓여있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눈이 아니라 호수가의 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이었다.

호수는 사해처럼 염도가 매우 높아 그 속에서는 물고기조차 살수가 없다. 반면 아주 좋은 질의 소금이 생산된다고 한다. 한참을 가자니 눈앞에 수많은 풍차가 나타났다. 천산산맥 협곡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이용해 풍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풍차군이라고 한다. 허허벌판에 쭝긋쭝긋 서 있는 풍차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점심때가 돼서야 우룸치에 도착했다. 우룸치는 신지앙성의 수도답게 제법 큰 도시로, 중심부의 훌륭한 고층 건물들과 고가도로는 여느 서구도시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경제적으로도 제법 풍족하게 지내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진설명> 천산천지

우룸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천산천지다. 천지는 천산산맥의 둘째 주봉인 5445m 높이의 보고다산 중턱에 위치한 큰 규모의 호수로 해발 1940m의 높이에 있는데, 그 경관이 가히 선경(仙境)이라 할 만큼 뛰어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신지(神池)’니 ‘천지(天池)’니 하며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 주변에는 100여개에 이르는 도교와 불교 수행처가 있다. 천지는 주나라 목왕이 서역의 선녀를 대표하는 서왕모를 찾아가 만난 곳으로 이름이 나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룸치에서 120km를 달려 천지 버스정류장에 당도한 우리는 마이크로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마이크로버스만이 천지 인근까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까지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험하기로 이름나 안전상의 이유로 다른 차는 올려 보내지 않았다. 빽빽이 들어선 전나무 숲길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니 평지가 나왔다. 종점이었다. 더 이상은 마이크로버스로도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천지까지는 거기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저 멀리 하얀 눈으로 덮인 천산산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을 더 가니 제법 넓은 호수가 시야 가득히 전개됐다. 일행의 입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야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문자 그대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아래 부분은 파란 침엽수로 가득하고 그 위에서부터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속에 진한 비취빛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눈부신 햇빛에 빛나고 있어 장관이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호숫가에는 서왕모가 목왕을 떠나보내며 지었다는 간절한 시구가 운치 있는 큰 돌에 새겨져 있었다.

願君長生(원군장생) 願君再來(원군재래)
‘임금님의 장생을 기원하며 임금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바란다.’

이곳이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다. 8일간의 여정 중 그 심하다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고, 줄곧 날씨가 좋았던 것은 참으로 천행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천험의 땅을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건 전법과 구도의 발길을 한 발, 한 발 떼 옮겼던 선지식들의 피눈물 어린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되짚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회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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