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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을 세운 대목 각희의 꿈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8.02.15 16:54
  • 댓글 0

특별기고 김상현 동국대 교수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대문은 그 정식 명칭이 숭례문이고 6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보 1호라는 것을. 양녕대군이 제액의 글씨를 썼다는 설이 있음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정작 이 건물을 세운 건축가의 이름을 아는 경우는 드문 것 같으니, 역시 등잔 밑은 어두운 것 같다.

태조 5년(1396)에 시작된 숭례문 건설은 1398년 2월에 완공되었다. 1448년과 1479년 두 차례의 중수를 거치기는 했지만, 해체․수리를 했던 1962년까지 이 건물은 세월의 풍상을 굳건히 이겨냈다. 해체 시에 발견된 1396년 10월 6일자의 상량문은 당시의 대목이 법륜사의 각희(覺希)였음을 명기하고 있다. 대목이 설계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설 현장의 총체적인 지휘와 감독을 맡았던 점에 유의하면, 각희는 뛰어난 건축 기술을 가진 승장(僧匠)이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설계도 한 장 가지지 않은 채 한 치의 착오 없이 거대한 건물을 세워 낸 뛰어난 장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없고, 다만 그는 고려 말의 고승 나옹의 문인이었음이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한양 정도에 얽힌 무학대사 이야기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지만, 신도(新都) 건설의 노역으로 고통 받았던 역승(役僧)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 또한 적다. 약 30년이나 계속된 이 대역사에 동원된 백성과 승려들의 노고는 혹독했다. 이 노역은 도망하는 인부를 참형에 처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태조 3년 2월 15일, 서소문을 고쳐 짓도록 명하고 석장승(石匠僧)의 머리를 베어 그 위에 메달아 나머지 사람들을 경계했다는 실록 기사는 놀랍지만 사실이다. 태조 3년 12월 4일 종묘와 궁궐터의 첫 삽질 때부터 승려들은 그 현장에 있었다. 억불정책의 강도를 차차 더해가던 이 무렵, 조정에서는 승려들을 거의 마음대로 동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술과 솜씨가 능숙할 뿐만 아니라, 처자식이 없어서 공사에 전념할 수 있고, 농사철에도 쉽게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석공과 목공과 화공, 그 어느 분야도 승려들의 기술이 앞섰다. 도성의 건설 중에서도 큰 문루를 세우는 일은 대목수가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숭례문 건설의 대목을 승장 각희에게 맡겼던 것도 이 때문이다. 동소문을 무학대사가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태조 7년 윤5월 16일 동대문 위에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본 왕이 관원에게 물었다. 공역을 그만 두게 했음에도 아직 역사를 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고. 일반 백성들이 사역에서 풀려난 뒤에도 승려들은 남아서 기와를 덮고 있었던 것이다. 1392년 평양성의 대동문 공사도 승려들이 했었다. 건축 기술은 승려들이 앞서 있었기에 동대문이나 남대문 같은 큰 건축물을 세우는 일은 이들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했다.

와장승(瓦匠僧), 의승(醫僧) 등도 도성의 건설을 도왔다. 새로 건설한 도성이었지만 백성들의 집은 모두 초가였다. 즐비한 초가를 기와로 바꾸려고 노심초사한 승려가 있었으니, 곧 해선(海宣)의 경우다. 화재를 예방하고 왕경의 격조를 높이고 미관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해선이 2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태종 6년부터 시작했던 이 사업은 몇 년 만에 기와집이 반을 넘을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태조 5년 도승통 종림(宗林)은 판교에 원(院)을 세워서 도성 건설로 오가는 사람들의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의승 탄선(坦宣)은 세종 4년 도성에 구료소를 설치하고 승려 300명을 인솔하여 축성으로 병들고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도 한양의 건설에는 승려들의 땀이 스며있었다. 강제로 사역 당한 경우든 백성들의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나선 경우든 간에.
 
화염 속에 무너져 내리던 숭례문, 그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 태우던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숫자만큼이나 많은, 천만 개도 넘는 숭례문이 사람들 가슴마다에 굳건히 세워진 것은 신비한 일이다. 대 건축가 각희의 꿈이 불사조처럼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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