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역사나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변화는 그럴만한 원인과 인연들의 관계 맺음이 형성되어야 이루어진다.

그러니 연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변화를 일으킬 만한 원인과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인과의 고리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다. 그리고 그 인과의 고리는 개인과 개인이 모인 집단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목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엄청난 변화 속에서, 고대사회를 이끌던 철학이었던 유교는 발판을 잃었다. 과거제도의 폐지와 축을 같이하여 “사서 삼경”은 이미 지식인의 필수 교양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를 “토플”이나 “토익”이 대신하고 있다. 관·혼·상·제의 의례들에 더 이상 유교가 관여할 틈이 없다. 가면 갈수록 유교는 과거의 유물로서 그것을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1000 여 년을 지배해 온 유학의 사상이, 겨우 50 여 년 정도에 완전히 사라질리 는 없다. 남성 중심의 사고나 권위주의적 사회구조 등이 아직도 남아 있기는 하다. 이런 문화는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수동적인 의미에서 정리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유학은 우리 역사에서 긴 세월 속에서 사회와 개인의 삶에 속속들이 배어들어 그것들의 유기적 통합을 관장해 왔다. 새 시대에는 이것에 상응하는 유기적 통합의 철학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한다.

새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앞날을 예견해 보기도 한다. 거기여는 반드시 지난날에 대한 검토가 수반된다. 지난 50 여 년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유교를 대신하는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통합의 철학이 물러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와 기독교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는 불교계는 어떻게 대응을 하였는가? 처음에는 이 변화에 대하여 매우 당황을 했었다. 그 결과 내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구조 자체에서 변화를 찾기보다는 표면적인 대응에 그친 점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일요법회가 것이다. 양력을 사용하다 보니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자연 그렇게 바뀌었다. 왜 절에서 법회를 하는지 역사적 불교적 되물음을 던지기에 앞서 우선 시작하고 봤어야 했다. 찬불가만 해도 그렇다. 이것은 각각 일요예배나 찬송가에서 모방해 온 것이다. 주지스님을 투표로 선출하고 종단의 대표나 종무담당자를 선임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전통과는 거리가 있는 방식이었다. 예산을 세우고 급료를 지급하는 것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등 기도비를 매월 내는 것도 다 그런 영향이었다.

막상 이러한 변화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구문화와 신문화를 일대일로 갈아 끼는 방식이 많았다. 사회의 구조와 그것을 떠받치는 철학이 달라졌다는 인식을 분명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리하여 헌 집을 수리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때움질 공사를 하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숨을 돌려 총체적 계획을 해야 할 때이다. 좀 여유를 가지고, 앞선 사람들의 지혜 덩어리인 전통을 살려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세워 가야 할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변화를 자신과 주변에 이익을 주는 쪽으로 진행하면 그 생명은 더욱 번성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마냥 남만을 따라서 변화했다가는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신규탁(연세대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