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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도쿄타워』릴리 프랭키 지음 / 랜덤하우스

부모의 임종을 겪어야 진정한 자식

1994년 12월의 한남동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였고 캐롤에 취한 인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그때 나는 순천향병원의 한 입원병동에서 거리를 내다보며 그해의 연말연시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하셨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위암 같대…. 소견서 써줄 테니 큰 병원 가보래….”라며 가족들에게 당신 자신의 종합진단 결과를 들려주던 아버지를 앞에 두고 가족들은 어땠던가요? 아니, 나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말기암환자가 된다 해도 우리 아버지는 절대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요, 설사 암에 걸린다 해도 우리 아버지는 기적을 불러일으킬 불사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앞으로 3개월”이라는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정말로 3개월만 살다가 가셨습니다. 그 3개월 동안 아버지는 무섭게 침묵 속으로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이따금 “요즘은 신약이 많이 개발된다고 하니까….”라는 말씀을 하신 걸로 봐서 뭔가 희미하나마 희망을 품고 계셨음에는 틀림없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였던가요?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지금 그리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또렷하게 떠오르는 일은 처음부터 ‘아버지’로 이 세상에 존재했던 한 인물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그 아픔이었습니다. 창조주보다 더 힘이 세고 그 어떤 불행도 과감히 밟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우리 아버지’가 실은 60년의 하루하루를 억지로 죽지 못해 살아왔으며, 절망과 슬픔을 그 어디에도 쏟아내지 못한 채 악으로 버티느라 제 몸 속에서 병을 키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목숨이 바로 내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자식을 엄하게 키우느라 쓸데없는 감정의 표현을 극도로 자제시킨 아버지는 당신의 몸이 무너지는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모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다만 모르핀마저도 그 효과를 내지 못하자 통증을 이기지 못해 침상 위에서 뱅글뱅글 맴을 돌며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입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너무 아픈 사람에게는 절망의 감정도 사치입니다. 나는 완고하게 팔짱을 낀 채 링거 줄로 온 몸이 칭칭 동여매어진 채 막연히 허공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지’를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이미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건만 지금도 문득 문득 ‘어떻게 하지’라는 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그때의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아나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뭐 한 남자의 아내였고 어머니였던 한 일본여성에 관한 이야기이겠거니 하여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선 아들이 나이 70에 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흘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부모의 임종’을 겪은 사람만이 ‘자식’으로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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