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경 스님의 세심청심]

기자명 법보신문

옹달샘이 사슴을 보듯

사람마다 마음이 있고(人各有心)
마음마다 보는 것이 있다.(心各有見)

무자년 정월의 기도와 행사를 마치고나니 시간은 훌쩍 키가 자라 3월이다. 정초의 7일 신중기도를 ‘산림기도’라 부른다. 흔히 말하는 ‘살림’이 바로 이 ‘살림(山林)’에서 유래한다. 일정 기간을 두고 이뤄지는 일이다.

경전을 강독하면 ‘경전산림’이다. 아직도 많은 사찰에서 정초에 방생을 가기도 한다. 절집의 고유한 문화이기도 하다. 우리 절에서도 꿩 방생을 다녀왔다. 정초에 기도를 올림으로써 한해의 무장무애를 발원하고, 방생을 통해 자비로운 마음을 기르자는 뜻이다. 오래 살고 싶은 게 생명의 본능이고,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일부러 고통스러워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은 물질과 상관없이 자유로울 수 있음에도 우리는 물질에 지나치게 얽매이며 살아간다. 그리고 물질의 구족을 ‘복(福)’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과연 복의 본질은 무엇일까? 복은 출세간적인 것과 세간적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출세간적인 복이 ‘청복(淸福)’이라면, 세간의 복을 ‘홍진(紅塵)’이라고도 한다. 왜 인간 세상을 홍진이라 했을까? 옛 당나라 수도 장안의 교통수단은 마차였다. 마차가 한 번 지나가면 붉은 흙먼지가 날렸는데 이것이 바로 홍진이다. 홍진 속의 인생은 부귀공명을 위한 삶이다. 보통 이것을 “홍복(洪福)을 누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황제에게 사용했던 ‘지고무상의 복’이란 뜻의 “홍복제천(洪福齊天)”에서 홍자를 같은 발음의 ‘홍(鴻)’자로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홍복’이란 그렇게 좋은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기러기 같은 복’이기 때문이다. 날아가 버리고나면 무슨 자취나 남겠는가?

조조의 둘째 부인 변(卞)씨는 기생출신이었다. 정실인 정(丁)씨가 이혼으로 폐위되고 그 자리에 올랐다. 왕업을 물려받은 조비를 비롯해 조창·조식이 변씨 소생이다. 그러나 출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품성은 남달라, 조조가 전쟁에서 노획한 패물들을 늘어놓고 고르라하면 그녀는 매번 중간 정도의 것을 골랐다. 누군가 이유를 묻자, “가장 좋은 것을 고르면 탐욕스럽다하고, 나쁜 것을 고르면 위선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중간 것을 고른다.” 조조는 변 부인의 이런 자세를 좋아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업은 의지력이다”고 말씀하신다. 업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과정, 행동, 에너지와 역량이다. 다시 말해 좋은 습관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씀.
하긴, 사슴이 옹달샘을 보듯 사는 게 아니라, 옹달샘이 사슴을 보듯 사는 법도 있으니까!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