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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3. 붓다의 숨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법향 가득한 탁발길에 이마를 대다

불교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 터. 붓다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말씀만이 따사로운 겨울 볕이 되어 무성한 대나무 잎 사이사이를 비추고 있다.

인도의 새벽은 발이 달린 동물 모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온통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소와 닭, 양과 사람들. 그 사이로 자동차와 릭샤 경적소리가 쉴 틈 없이 울려대 타지 사람들을 어리바리하게 만든다. 인도의 자동차는 여전히 뒷거울(백미러)이 없고 릭샤꾼들은 한 술 더해 뒤를 보며 앞으로 질주한다. 위태위태한 모습에 멈칫멈칫 걸음을 멈춰보다 이내 노파심을 접어두고 서둘러 그들 속으로 파고든다. 마치 대하소설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은 인도의 새벽.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생명력 넘치는 새벽이다.

고스란히 그 기억을 품고 도둑이 우글거리기로 유명한 라즈기르로 향한다. 부다가야에서 라즈기르는 서울에서 천안 정도의 짧은 거리로 기차가 아닌 버스로 이동한다. 이곳에서는 버스여행 또한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인도와 차로가 따로 없는 이곳에 대형 버스가 지나자 인도인들은 하던 일을 멈춘다. 그리고 일제히 버스에 탄 사람들을 주목한다. 거지들은 손부터 내밀고, 도란도란 모여 짜이를 마시던 터번 두른 남자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큰일이 생긴 것 마냥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어린 아이들은 손목이 부러져라 양손을 흔들어 대고, 자전거를 탄 남학생 무리는 가던 방향을 틀어 버스의 앞과 뒤를 호위한다. 버스에 앉아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라즈기르는 붓다가 여러 차례 안거하고 많은 법문을 설했던 장소다. 왕사성(王舍城)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탁발을 하는 붓다의 모습을 보고 국왕 빔비사라가 귀의한 뒤 불교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를 세운 곳이다. 그 당시 훌륭한 집안의 자제들이 다투어 붓다의 제자가 되자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원성이 높았던 곳. 붓다의 위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대숲절(竹林精舍)이다. 북적이는 시내를 지나고 초가로 지은 가옥과 무너진 집터들을 지나니 어느새 죽림정사 입구에 다다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동물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모를 배설물로 온갖 지린내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이곳 역시 순례자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거지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동냥이다. 관심도 없을 붓다의 체취를 매개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눈동자가 슬픈 이들이다.

아치형의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촘촘히 모여서 군집을 이루고 있다. 대나무의 형상이 마치 우리네 삶 같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이뤄야 하는 세상의 이치와 닮아있다.

이 대숲을 지나면 정사를 기증한 장자의 이름을 딴 까란다 연못이 있고, 대나무 숲 왼편 언덕에는 승원 터로 추정되는 곳이 보인다. 그러나 그 터 위에는 이슬람교도의 무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래서 불자들은 이슬람교도의 무덤에 삼배를 올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의 주인공이 된다. 터와 기단, 기둥 등 부재만이 존재하는 이곳. 붓다가 오랜 시간 머물렀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오로지 사리푸트라(사리불)와 목건라야나(목건련)의 물음. 그에 답을 해 주시던 붓다의 말씀이 따사로운 겨울 볕이 되어 무성한 대나무 잎 사이사이를 비추고 있다. 이미 오래전 붓다의 향기는 사라졌지만 붓다의 숨소리는 여전히 이곳에서, 이 우주 공간에 울리고 있다. 발걸음을 돌려 걸어가다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대나무들이 명상하는 자의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붓다에 귀의하고 붓다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양했던 빔비사라왕이 아들 아자타샤트루에 의해 굶어 죽은 감옥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 빔비시라 감옥 터가 있다. 붓다에 귀의하고 붓다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양했던 빔비사라가 아들 아자타샤트루에 의해 굶어 죽은 곳이다. 붓다가 열반하기 8년 전 이곳 감옥에서 붓다에 예배드리며 조용히 죽어간 빔비사라 왕. 왕위 찬탈을 위해 아버지를 굶겨 죽이고 어머니 발목마저 잘라버린 아들의 몹쓸 짓이 현대판 패륜아와 다르지 않아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 산을 보기란 드문 일이지만 뒤편으로 멀리 올려다보이는 곳이 바로 영축산이다.

‘바른 법을 가르치는 가장 고귀한 연꽃과 같은 불경’이라는 『법화경』이 설해진 곳. 붓다의 열반이 임박해졌을 때 가르침이 설해진 곳이기에 영축산으로 가는 길은 그 어느 길보다 고귀하다. 붓다 역시 이곳을 탁발과 수행을 위해 수시로 오르고 내렸던 길이라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 아껴가며 계단 길을 디딘다. 오르는 길 곳곳에 붓다의 제자들이 수행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작은 동굴과 절터에 금박과 오색의 깃발은 이곳이 성지였음을 알려준다.

현장 스님의 기록에 따르면 영축산 꼭대기에 벽돌로 정사가 지어져 있었고 붓다가 가르침을 폈던 설법상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1903년에 복원된 설법좌, 즉 여래향실과 아난다가 머물렀다는 시자실의 기단부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영축산 정상 설법좌에서 티베트 스님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정상에 있는 설법좌에 도착하니 티베트에서 온 스님들과 한 가족이 예불을 올리고 있다. 그들의 간절함 뒤에서 두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댄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의 108배가 끝난 후에도 티베트 가족의 기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 살배기의 오체투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구부린다. 걷기도 벅차 보이는 몸뚱이를 양손과 발가락에 의지하고 이마를 땅에 댄다. 엉거주춤 궁둥이를 하늘로 추어올리고서 양손과 두 다리를 쭉 뻗는 오체투지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 고결하고 아름답다.

엉거주춤 궁둥이를 하늘로 추어올리고서 양손과 두 다리를 쭉 뻗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 어떤 것보다 고결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아이의 눈에는 마치 붓다가 보이는 듯하다. 아이의 티 없이 맑은 웃음이 하늘에 닿아있다. 그 웃음이 흘러가는 구름에 떠올라 붓다를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아이의 전연(前緣)으로 이곳은 잠시 과거와 현재가 하나 되어 세월의 강물이 멈추어 선다.

안소정 기자 as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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