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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 특별기고] “신음하는 강과 “함께 합시다”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8.03.24 13:04
  • 댓글 0

3월 7일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부처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참회법회’를 감동적으로 장엄해 주신 운문사 학인 여러분. 먼저 이 법회를 주관한 종교환경회순례단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날 여러분들의 모습은 눈부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승가의 위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천하를 통째로 삼킬 량으로 토굴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절 인연으로 환경 운동의 말석에 서게 되었습니다. 난폭한 주인이 노예를 부리듯 자연을 대하는 세상의 성정을 제도할 법력은 턱없이 모자라는지라,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쪽을 택한 것이지요.

운문사 학인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중생 제도’일까요? 소박하게 얘기하자면 먼저 수행자로서 제대로 된 중노릇을 하는 것이겠지요. 조사 스님들의 말씀에 기대어 표현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겠지요.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는 삶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일러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선 자리를 절대 평등의 땅으로 만드는 참사람, 출가 수행자라면 당연히 꿈꾸어야 할 이상형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진솔한 말과 행동으로 부처님의 삶을 따르는 것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그러한 삶에 다가갈 뿐입니다. 이생에서는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내세’를 핑계로 이생의 실패를 합리화화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순간 내가 선 곳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더 생각할 게 없습니다. 지금은 오직 강을 따라 흐르는 일이 그것입니다. 걷고 또 걸으면서 매순간 도처에서 빛나는 ‘법신(法身)’의 광휘를 느낄 뿐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걸으며 산하대지의 무진 설법을 듣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요즘 강을 따라 걸으면서 새삼 놀라는 것이 우리의 산하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비경이니 절경이니 하는 곳을 찾는 일이 참 실없는 짓이구나 하는 것도 느낍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의 가르침은 우리의 국토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대운하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지도를 펼쳐 놓고 지극히 기계적인 발상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두두물물이 법신의 현현이라는 말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여러분을 기꺼이 순례에 초대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비경이나 절경을 찾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서 아름다움에 감동할 줄 아는 심미안을 발현시키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걸음이 단순히 대운하 반대가 아니라 수행과 성찰의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한국 불교의 모든 학인 여러분!
여러분을 순례에 초대합니다. 함께 걸으면서 관용적 추상어가 되어버린 ‘깨달음’이니 ‘중생제도’니 하는 말을 현실 공간에서 살아 숨 쉬게 합시다. 사찰의 중요한 구실 중 하나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번뇌와 욕망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든 사찰은 ‘세상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도 강의실도 교사도 없지만, 만물로부터 스스로 가르침을 얻게 하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저는 이번 봉암사 법회에서 운문사 학인들과 재가 대중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중노릇을 하면 저잣거리에 서도 그곳을 출세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냥 밥만 축낸다면 심산유곡에서 신선 흉내를 내도 저자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될 것입니다. 진정 세간과 출세간이 둘 아닌 도리를 실천으로 보여 주십시오.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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