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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홍 박사의 新교상판석]④ 역학과 불가사상

기자명 법보신문

易은 우주 존재-운동원리 표상

화엄법계는 주역의 세계와 일치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는 그야말로 동양학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천 년간 동양에서의 학문적 연구 및 실천수행 측면의 정점은 바로 주역의 해석에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역이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기록된 경전으로서만 그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함축된 사상 때문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우주의 이치를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즉 역(易)이란 우주의 존재원리와 운동 원리를 표상하는 것이자, 현대식으로 말하면 복잡계의 다른 명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역학에서 태극 음양 사상 팔괘 64괘로 표현되는 기호학으로서 세상의 보이는 질서와 보이지 않는 질서를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현대학문에서 수학과 철학 및 제반 학문을 전개하는 것과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역의 사상을 상(象, 패턴)과 수(數, 질서)로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듯이, 현대 학문에서도 수많은 관점과 갈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가의 교리체계에서 우주속의 인간과 만물을 보는 입장을 동아시아의 주역과 대비하여 살펴보는 것이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온 두 지적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래된 이후를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는 주역을 불교교리와 연계시킨 당나라 이통현 거사의 『신화엄경론』과 명나라 삼대선사중의 한분인 지욱선사의 『주역선해(周易禪解)』의 관점을 빌리기로 한다.

주역에서는 변화를 전제로 개념을 전개하고 있다. 즉 만물은 변화해가며 성주괴공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변화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 일관적인 생명진화의 흐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의 사상은 변화를 통한 불변이라고도 표현하며, 이를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일체만물이 무상한 가운데, 그 이면에는 변하지 않는 반야의 지혜가 있다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변하는 질서와 변하지 않는 질서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화엄철학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보는 현상 속에 반야의 지혜가 드러나 있으며 중생과 붓다는 연기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주역에서는 모든 세상의 이치는 건(乾)과 곤(坤)을 주축으로 펼쳐져 있다고 표현하며, 이러한 건과 곤의 개념을 지욱선사는 『주역선해』에서, 건은 ‘지혜’이고 곤은 ‘자비’라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 세상만사는 유가나 도가식으로는 건과 곤의 펼쳐짐이 되고, 불가식으로는 지혜와 자비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한편 이통현 거사의 『신화엄경론』에서는 화엄법계가 바로 주역의 세계와 일치하는 개념이라고 직시하고 있다. 풀어서 말하면 불교의 연기와 고집멸도의 사제와 성불을 하기위한 팔정도의 가르침을, 통현거사는 연기는 태극의 본질인 순음(純陰)과 순양(純陽)의 유기적인 상관관계로 보고, 사성제는 사상(四象)(태양, 소음, 소양 및 태음)으로, 팔정도(八正道)는 팔괘(八卦)의 정신으로 배대하고 있다. 또한 64궤를 32괘의 연기작용으로 보아서, 붓다의 방편으로 나타난 32화신의 이름을 32괘에 연계하고 있다.

참으로 유불도를 회통한 통찰적인 견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장면은 이 모든 64괘의 변화는 무심(無心)에서 비롯하며 그 무심(無心)은 불심(佛心)이라는 대목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변화를 방편으로 살펴보되 불도의 진정한 목적은 그 모든 변화의 근원인 무심으로 되돌아가 머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통현거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월적 해탈이 아니며, 현상을 인정하고 그 현상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불도수행의 목적이라고 갈파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사상적 흐름에서는 통현거사의 사상은 유마거사의 대승불교정신을 승계하고 있으며, 통현거사와 지욱선사의 사상을 집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유가와 도가에서는 주역으로서 인간과 자연을 해석하는 체계를 세웠고, 불가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화엄의 교리체계로 정리가 되었으며, 현대에는 복잡계라는 개념으로 다시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제홍 영국 뉴캐슬대학 화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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