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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보조 스님 말씀이 딱 맞네요
『계초심학인문 새로 읽기』김호성 지음 / 정우서적

가까운 이를 어쩌다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저런 책이 쌓여있는 가운데 한 권을 빼내더니 두어 페이지 읽어내려 갔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덮고는 한숨을 폭 내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역시 불교는 어려워.”

그가 덮은 책을 집어 들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책은 전혀 어렵지 않은, 오히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고 난 뒤에 던져버려도 그만일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이 어려워?”
내가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불교는 어려워, 역시.”
“이 책 어느 부분이 어려웠는데?”
심문하듯 캐묻자 그가 외려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불교가 어디 쉬운 종교니?”

화두를 든 납자를 일러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마주하였다’라고 하더니 내게는 ‘불교가 어렵다’라는 친구들의 생각이 은산철벽입니다.
하도 어렵다고들 하기에 논소(論疏)의 내용이 아닌 경전의 구절을 이용해서 강의를 하면 어떤 이는 실망을 하고 떠나갑니다.

“다 아는 얘기 듣자고 온 것도 아니니….”
하여, 일부러 사자성어나 내 자신도 잘 모르는 선어록에 나오는 용어들을 한자로 대충 휘갈겨 칠판에 쓰면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보기도 합니다. 그들은 흐믓해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불교는 심오해. 저 뜻을 우리 같은 중생이 어찌 완전히 알 수 있겠냐 말이야….”
그만 딱 울어버리고 싶을 때가 이 때입니다.

불교는, 또는 진리는 어렵다는 생각을 지레 품고 있으니 그 세계에 관한 책을 읽을 때나 강의를 들을 때도 아예 귀담아들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당연히 어려워야 할 불교’이기에 정작 경전 이야기나 법문을 들으면서도 ‘이건 불교 아니야’라고 생각합니다. 쉬워도 문제, 어려워도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이 미리 들어차 있으니 도대체 글 한 줄, 강의 한 대목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만약 종사(宗師)가 법좌에 올라 설법하는 자리에 참여하였으면 법에 대하여 어렵다는 생각(懸崖想)을 내어 물러나는 마음이 생기거나, 늘 듣는다는 생각(慣聞想)을 내어 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며, 응당 마음을 비우고 법문을 듣는다면 반드시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다.”

보조스님의 『계초심학인문』 속의 한 구절입니다. 평소 자주 열어봤건만 이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걸 보니 역시 공부는 시절인연이 중요한가봅니다.
스님, 정말 그렇지요? 제가 800여 년 전 스님의 그 마음을 이제 좀 알겠다니까요.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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