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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달라이라마께서 지켜주실 거야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

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 지식의 숲

영국 사람, 티베트 사람, 중국 사람 셋이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영국 사람이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마구 찍어대더니 냅다 카메라를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카메라야 영국에는 너무나 흔하니까!”

중국 사람이 곧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고는 담배가 많이 남아 있는 담뱃갑을 차창 밖으로 휙 던져버렸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담배쯤이야 중국에 너무 흔하거든!”

티베트 사람은 가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곁에 앉아 있던 중국 사람을 차창 밖으로 내던져 버리더니 말했습니다.

“중국 사람은 티베트에 쌔고 쌨으니까!”

중국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라싸에는 생수 값보다 맥주 값이 더 싸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고된 노동으로 한 푼 두 푼 모아둔 아내의 품삯을 훔쳐낸 티베트 남자들은 값싼 술을 마시러 다니고, 술을 먹으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외도나 윤락, 도박의 유혹을 피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집안에서는 폭력이 이어지고, 그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티베트 아이들이 무얼 보고 배울지는 안 봐도 빤합니다. 아주 쉬운 해결책도 있습니다. 중국사람, 즉 한족에 동화되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들을 따라하면 어쩌면 돈도 좀 만져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하기 짝이 없는 티베트 사람들은 재산목록 1호인 양을 팔아치우면서까지 돈을 마련합니다. 그 돈으로 아이의 두툼한 점퍼를 사고 선글라스를 삽니다. 그러고도 여전히 두둑하게 남은 큰돈을 가이드에게 선뜻 줘버립니다. 히말라야를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가이드를 따라서 중국 공안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낮에는 숨어 지내고, 해발 8천 미터의 봉우리들이 검은 거인처럼 줄지어선 히말라야의 밤길을 도둑고양이처럼 넘어야 합니다.

“달라이라마께서 너를 보살펴주실 게다”라는 엄마의 축복을 끝으로 티베트 아이들은 목숨을 내걸고 여행에 나섭니다. 인도 다람살라, 그곳으로.

배우로 살아가던 독일 여성이 느닷없이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프리랜서 작가로 변신하였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히말라야를 넘다가 싸늘한 시체로 변한 티베트 아이 둘을 보고는 티베트의 운명을 세상에 알리고자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 역시 중국 공안에 걸려서 감옥생활도 하였고 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아슬아슬한 산행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녀, 마리아 블루멘크론 덕분에 나는 지금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들의 절규를 조금은 더 절실하게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어느 한 구석에서는 자유와 밥을 찾아 나선 아이들이 시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대체 그 아이들이 어째서 그런 극한의 경지로 내몰려졌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제대로 아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나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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