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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시력을 잃어가는 나의 방울이

기자명 법보신문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지음 / 청년사

미니호, 삐삐, 쫑, 무키, 흑돔이, 복태….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집 개들의 이름입니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개가 없었던 해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여 헤아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개를 기르지 않고 지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종이든 가리지 않고 개는 언제나 내 옆자리에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집에서는 수십 마리를 길러본 적도 있었고, 지금은 두 마리가 내 발 아래에서 칭얼거립니다.

동물을 길러본 사람은 압니다. 녀석들이 은근히 깊은 정을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사람이고, 녀석은 동물이니 우리 사이에 달콤한 밀어가 오고간 적은 단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데에는 말보다 눈빛과 접촉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녀석들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화가 났을 때, 섭섭해 할 때, 무안해할 때, 기분좋아할 때 녀석들은 참 묘하게도 표정이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주인인 나를 어르고 달래는 표정과 몸짓까지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애완동물이란 말은 쓰지 말라는 권고도 많이 받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해도 장난감이 아니라 엄연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반려동물이라고 불러야 옳다는 지적입니다. 아무리 종자가 훌륭하고 비싸고 귀엽다고 해도 개는 개일 뿐인데 애완이면 어떻고 반려면 어떤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를 길러보고 개와 함께 살아본 사람들은 ‘애완’이 아니라 ‘반려’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을 깊이 수긍할 것입니다.

우리 집의 두 마리 개 중에서 한 녀석은 크림색 털을 가진 포메라이언종입니다. 방울이 이 녀석은 그 애교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녀석의 둥그렇고 커다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 눈에서 흑진주가 두둑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식탐이 워낙 커서 심지어는 내 핸드백 지퍼까지 입으로 열고 비스킷을 찾아내어 먹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내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녀석이 부쩍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밝은 낮에는 그럭저럭 견디는데 해만 지면 꼼짝을 못합니다. 주인이 부르면 정신없이 달려 나오지만 사방에 주둥이며 온몸을 부딪치기 일쑤입니다. 맛난 간식도 코 밑에 대어주어야 냄새를 맡고 먹을 정도입니다. 불쌍해서 꼭 안아주면 앞을 보지 못하는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뚝한 코를 내 겨드랑에 박고는 가르릉거립니다. 성견이 되어서 우리 집에 와 이제는 슬슬 노년에 접어든 방울이. 머지않아 밝은 낮에도 앞을 보지 못해서 고생할 텐데 일 때문에 종일 집을 지키지 못하는 이 주인이 얼마나 충실하게 보살펴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무래도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개를 기르다』를 몇 번 더 읽으면서 생명에 대한 예의를 배우고 익혀야 할 것 같습니다. 방울이는 만화책 속의 탐처럼 내 인생의 어느 시기를 함께 살아준 나의 길동무, 반려이니 그 목숨을 무시당하지는 말아야 하겠지요. 적어도 내가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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