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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의 세심청심]

기자명 법보신문

반야바라밀

휘파람새가 뱃고동 소리처럼 길게 울어예니 새벽이 밝아오고 밤새 끊어진 뱃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섬에서는 지금이 가장 바쁜 농사철이라서 특산물인 양파 출하가 한창이고 머지않아 톳을 채취하여 실어 나르는 배들이 끝없이 오고 갈 것이다. 산에는 어느덧 나무마다 순한 떡잎들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어 갓난 애기처럼 칭얼거리고 고사리가 여린 주먹을 쥐고 다투어 오르고 있다. 이처럼 삼라만상이 계절을 따라서 변하면서 쉼 없이 돌아가지만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것은 저마다 반야의 배에 의지하여 타고 넘는 까닭일 것이다.

육바라밀은 대승 실천사상의 핵심으로써 생사의 바다를 건너 피안의 저 언덕에 이르는 나룻배와 같다. 그 중에서 반야바라밀이 다섯 가지를 포섭하니 근본이 되는 것이다. 『금강경』 첫 머리에서 부처님께서는 반야의 실체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때 시내에서 선원을 운영하며 동대문 시장에서 수행삼아 처음 탁발을 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직 네 가지 상이 녹아지지 않았을 때라서 사람들이 멸시하는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반야가 드러나지 않아 법을 베풀어 보시의 공덕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체 상이 끊어진 법을 베푸는 보시바라밀을 통해서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물건인 삼륜이 청정함으로써 반야가 여실하게 드러남을 보게 된다. 인욕선인이 가리왕에게 신체를 절단 당하고서도 일체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반야가 출현을 했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네 가지 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고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견성한 연후에도 모든 선법을 닦아 남은 업을 모두 다함으로써 구경열반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선동귀집』에서는 반야를 증득하지 못하고 육바라밀을 행한다면 유위의 과보가 다시 생사의 원인이 되어 열반의 과를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반야란 망망한 대해에서 험한 파도를 만나면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섬이며 생사의 대해를 건너는 나침반이다. 또한 어리석음의 그물을 잘라내는 지혜의 칼이며 가난을 구제하는 보배 구슬이니 만약 반야를 밝히지 못하면 어떤 만행이라도 유위의 과보를 면하기 어렵다. 조사의 말씀에 반야의 현지를 밝히지 못하면 한갓 염정만을 수고롭게 할 따름이어서 한 방울의 물과 한 톨의 쌀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고 했다.

앞마당에는 아직 어린 하얀 진돗개 진불이가 저리 달리고 이리 구르면서 한참 어리광을 부리며 마음껏 반야를 연출해 내고 있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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