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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슬람 신자의 기도

기자명 혜민 스님

부시 곁에 이슬람 참모 뒀다면

평소 잘 보지 않던 TV에 자주 눈길이 간다. 때가 때인지라 아무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 할 수가 없어서이다.

며칠 전 맨하탄 중심 도로 위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침 뉴스 시간에 방송됐다.

1백 여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의 도로 위를 가득 메우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출근으로 바쁜 아침 시간이라 각 방송사들은 도로 교통 상황을 보도하면서, 그들의 시위 모습을 방송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 싶다. 전날 미국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셀 수 없이 폭격했고, 그 결과 많은 이라크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날 시위는 이라크의 참상을 알리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나와 죽은 듯 도로 위에서 누워 있었을 그들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폭격으로 죽은 많은 이라크 사람들에 대한 애잔함이, 또 한편으로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려는 그들의 정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반전 시위는 미국 내 대학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 논문 자료를 찾기 위해 맨하탄의 콜럼비아 대학에 들렀을 때 가장 먼저 만난 것이 대학생들의 반전 시위였다. This is my college but NOT my war? (이곳은 내 학교이지만 요번 전쟁은 내 의견과 상관없는 전쟁이다).

대학생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큰 종이에 써서 캠퍼스 한 가운데서 들고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지하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전 내용을 담은 유인물에서, 4월 12일 워싱턴 DC에서 백악관을 빙 둘러싸는 반전 집회를 한다는 내용의 전단지까지 다양한 내용의 홍보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어떤 중년 여성은 워싱턴 DC까지 무료 버스를 운영하겠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열심히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반전 운동보다 더 절실하게 내 마음을 울린 사건이 있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절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 그 날만큼은 계단을 사용했다.

도서관 건물 내 엘리베이터는 시설이 상당히 잘 돼 있기 때문에 계단은 인적이 드문 건물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계단을 내려가는 한참동안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3층쯤 내려갔을까. 난데없는 인기척에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계단 한 귀퉁이 벽을 보고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슬람교를 따르는 어느 여성이었다. 매일 5번씩 기도하라는 이슬람교의 계율을 그녀는 도서관에서도 묵묵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밤색 천으로 가리고 자신이 절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에다 같은 색의 천을 깔고 메카를 향해서 알라 신에게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던 나 자신이 미안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사이에서의 갈등을 지켜보아야 하는 그녀와 같은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부시 대통령이 기독교 원리주의자나 유태인 참모들만을 주변에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그녀와 같이 계단 복도에서 남 모르게 조용히 기도하는 이슬람계 참모도 함께 두었다면? 그랬다면 오늘날과 같은 참혹한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관점의 차이가 이토록 잔혹한 전쟁의 원인 인 것이다.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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