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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소년의 살인, 그 후에는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청소년 범죄가 심상치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지방의 학교에서 집단 성폭력이 이루어졌다는 기사가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국의 지진과 미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국내외가 어지러웠던 탓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합니다.

1969년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공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고교1학년생이 같은 반 친구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게다가 친구의 머리까지 잘라내었습니다. 학교와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범인은 미성년자이므로 소년원으로 보내졌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된 채 지내야했습니다. 그 후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사실 형벌을 다 받은 그를 뒤쫓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철없던 시절에 저지른 못된 짓 때문에 앞날을 구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소년은 국가에서 무료로 실시한 갱생교육을 잘 받아서 변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름도 바꾼 터라 소년의 이력에는 전과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50대의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들 하나 딸 하나 두고 도란도란 살아가던 가족은 일시에 파괴되었습니다. 엄마는 2년 동안 자리보전을 하였고 순식간에 백발이 되었습니다. 딸은 비명에 간 오빠에 대한 충격과 그 빈자리를 대신하지 못하는 죄책감과 냉랭한 집안의 공기를 묵묵히 감수해내느라 제 손목을 습관적으로 긋는 비뚤어진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내색할 수 없었습니다. 누워버린 아내를 대신해서 살림을 챙기고 딸을 돌보고 직장에도 다녀야했습니다. 언제나 속으로 울음을 삼키던 아버지는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가해자 소년의 아버지는 사건 당시 적당한 보상금을 제시했지만 피해자 가족은 그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은 가해자는 보상금 미지급에 대해서는 외면합니다. 물론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서 사과하는 일 같은 것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이렇게 말합니다.

“얘가 뭘 알고서 그랬겠어?”
“똑같이 자식 낳아 기르는 입장인데 그냥 넘어가.”

인격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나이에 저지른 일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피해자 가족들에게 “당신이 혹시 전생에 지은 업보를 받았거니 생각하고 그냥 참고 용서해라”라며 설득해야 할까요?

청소년 범죄는 죄를 물을 곳이 딱히 없다는 것에 그 폭력성이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그게 죄인 줄도 모르고 저지르고, 설령 죄인 줄 알아도 어리니까 넘어가 주리라고 쉽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 무섭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이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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