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심청심] “내 잘못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사물은 연기적 순환 고리로 존재
내 존재 유익한지부터 생각해야

근대 한국 불교의 대선지식인 경허선사(鏡虛 惺牛, 1849~1912)의 제자 중에 혜월 선사(慧月 慧明, 1862~1937)가 있다. 만공과 수월이 초승달과 반달이라면 스님은 보름달로 비유될 만큼 경허의 출중한 세 제자 중에서도 법력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스님께서 양산 내원사에 계실 때, 어떤 사람에게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싼 값에 넘기고 말았다. 대신 그 돈으로 산비탈에 다랑이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천수답을 개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일꾼들을 사서 했는데도 다섯 마지기 판돈으로 겨우 세 마지기 밖에 일궈내지 못했다. 제자들은 손해가 아니냐며 불평을 해댔다. 스님이 나무라셨다. “이놈들아,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지, 논 판 돈은 조선 사람들이 품삯으로 받아 그 동안 잘 먹고 살았지, 산비탈에 없던 논 세 마지기가 새로 생겼으니 큰 이득이지.” 제자들은 스님의 셈법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다시 스님의 말씀.

“너희들의 계산이 이상하구나. 나는 이득을 보아도 아주 크게 보았느니라.”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 만물로써 추구를 삼고…,”(天地不仁 以萬物 爲芻狗, 『도덕경』5장)라는 말을 새삼 되뇌어 보는 이즈음이다. ‘추구(芻狗)’는 옛날에 제사지낼 때 지푸라기로 만든 ‘개(犬)’이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바로 버려지는 건 당연지사. ‘불인(不仁)’은 『장자 남화경』 ‘대종사’ 편에 나오는 “그 덕택이 만물 만대에 미치지만 인자하지는 않다”(澤及萬世而不爲仁)는 것과 같은 말이다. 천지가 만물을 길러주지만 어떻게 해 줄 도리가 없다. 독일 철학자인 하이데거(1889~1976)의 철학개념으로 말하자면 “존재 자체가 사건”이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갑자기 안 열리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나무가 생겨난 자체가 연기적인 순환 고리의 중심이다. 모든 사물의 이치가 이와 같다.

지구촌 곳곳의 자연재해가 두렵기 짝이 없다. 미얀마는 사이클론으로 전 국토의 70%이상이 물에 잠기면서 십만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고, 중국은 티베트의 저항으로 곤란을 겪더니 이제는 초강력 지진(히로시마 투하 원자탄의 230개 폭발 위력)이 쓰촨성을 강타했다. 여기에 비하면 ‘쇠고기 개방’을 둘러싼 우리의 논란은 차라리 호사스러운지도 모른다.

지구상에는 약 230억 마리 가축이 사육되고 있다. 돼지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옥수수 7㎏, 쇠고기는 무려 11㎏이 든다. 지구 전체 생산 곡물의 3분의 1을 그들이 먹어 치운다. 소 1만 마리가 사육장에서 배출하는 유기 폐기물은 11만인구의 도시 쓰레기양과 같다고 한다. 조미료고 화장품이고 라면 스프고, 학대 받은 소의 망령이 스며들지 않는 게 없다. 누가 누구를 위한 존재의 이유는 없다. 각각의 모든 만물이 서로간의 조화 속에서 존중되어지지 않는 한 천지는 우리에게 인자하지 않을 것이다.

혜월 스님은 또 길에서 싸우는 낯선 부부를 보고 “내 잘못이니 싸우지 말라”고 하셨다 한다. 가장 고귀한 행복은 깨달음의 각 단계에 이를 때마다 생기는 지복(至福)이다. 내 책임으로 보고, 나의 존재는 우주적으로 유익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쇠고기 사태’에서 보듯 문제의 발단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늦을수록, 우린 아파도 크게 아파야 한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