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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진 시위 문화와 촛불집회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종교의례에서는 상징적인 물건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연등공양이나 향공양 등은 단순히 물건에 지나지 않고 그것이 갖는 상징성이 크다. 특히 부처님 전에 사용하는 촛불은 지혜를 상징하며 무명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길 기원하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시위현장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는 촛불집회는 과거 시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과거 1980년대 시위에서는 각목과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투석과 화염병이 날아 다녔다. 여기에 대처하는 경찰은 최루탄으로 무장하고 닭장차에는 시위군중이 잡혀가곤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시위 모습과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시위현장이 종교의식화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러한 관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이와 같이 비춰지고 있다.

시위현장에 불교의식이 등장한 것은 박종철 군의 사망으로 그를 추모하는 49재가 거리에서 행해진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당시에는 시위를 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장례식이나 노제, 49재가 이슈화 되어 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것이 발전하여 새만금 살리기를 위한 삼보일배가 진행되었다. 삼보일배의 시위는 국내외적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뉴스가 되기도 하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촛불집회의 연원을 살펴보면, 신라시대에서부터 행하였던 연등회(燃燈會)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무명의 구름을 없애기 위해 연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던 축제였다. 고려시대에는 불탄절을 기리는 축제였던 것이 이제는 초파일의 행사 중 가장 비중 있는 행사로 꼽히고 있다. 아무리 가로등이 거리를 훤히 비춘다고 할지라도 정성스럽게 만든 연등에 촛불을 밝혀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 촛불에는 찬탄과 기쁨, 환희, 지혜가 담겨 있다. 기쁨이 가득한 마음으로 손과 손에 연등을 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염불로써 온 거리를 메운다. 부처님오신날 하루만이라도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불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장엄하고 장하다. 연등축제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축제의 하나로 되었으며, 불자뿐만 아니라 국민의 축제로 승화되고 있다.

필자는 요즈음 밤마다 서울광장이나 청계천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비추고 있는 촛불집회가 연등축제와 같이 되길 바라고 있다. 사회적인 이슈를 결집하여 표현하면서도 비폭력, 무저항으로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된다. 만약 이들이 촛불 대신 각목이나 화염병을 들었다면, 집회현장은 어떻게 될까? 누구든지 촛불 앞에서는 마음이 엄숙해지고, 거룩해지며, 성스러워 진다. 자신의 힘으로 부족할 때 절대자에게 기원하면서 촛불을 밝힌다.
그 앞에서는 마음이 차분해지며, 기쁨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룩한 기도 장면을 표현할 때 촛불 앞에서 합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정자들은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것이다. 비폭력적이고 준법적이라고 하여 이러다가 말 것으로 생각해서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적인 시위보다 더 간절한 국민의 바람이 담겨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밤마다 촛불을 들고 모여드는 국민의 바람이 어디에 있는지 빨리 간파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엄청난 힘이 엉뚱한 것으로 표출된다고 함을 잊지 않길 바란다.

또 촛불을 든 사람들 역시 그 의미에 벗어나지 않는 집회가 되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층 성숙된 시위문화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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