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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인간, 그 역설적인 존재

기자명 법보신문

『쥐 1, 2』아트 슈피겔만 지음/아름드리미디어

요즘 날씨가 자주 꾸물합니다. 이런 날에는 간식거리 잔뜩 사놓고 어둑한 방안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딱입니다. 그럴 마음으로 만화책을 한 권 펼쳤습니다. 하지만 나치에게 처참하게 당한 유대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만화책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어찌나 거칠게 그려졌는지 만화를 본 게 아니라 아주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힘들게 인터뷰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쥐’는 유대인, ‘고양이’는 나치입니다.
유대인인 슈피겔만과 그의 아내인 아냐는 나치 치하에서도 처음에는 넉넉한 재산으로 그럭저럭 버티어갑니다. 설마 전쟁이 오래가기야 하겠냐는, 그리고 설마 그런 끔찍한 재난이 진짜로 자신과 가족에게 덮치겠냐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올 것은 오고 말았습니다. 화목하고 풍요롭던 집안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수용소로 흩어집니다.

주인공인 슈피겔만은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장사에도 능하며,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어서 그 어떤 모진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수용소에서도 평소에 눈여겨봐둔 구두수선기술을 활용하거나, 영어를 가르치면서 빵을 구하였고 극한적인 상황에서 한 걸음 비껴서는 슬기를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윽고 전 세계를 휩쓴 광기의 시간이 지나고 극적으로 아내를 만나 다시 행복한 삶을 꾸려가지만 그는 변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수용소의 끔찍한 기억을 털어내지 못하고 자살하고 맙니다. 그는 사소한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동전 한 닢에도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를 전후세대인 아들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너희는 몰라.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세월을 지내왔는지…”라며 손사래만 칠 것도 아니요, “이미 시대가 달라졌어요. 언제까지 과거만 기억하며 사실 건가요?”라며 윽박지를 수는 없습니다. 아들은 어떻게든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만 했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는 아버지 또한 아들의 삶의 일부이기도 하니까요. 그리하여 아들은 틈틈이 아버지를 방문하여 고통의 시절에 대한 증언을 채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화로 엮어냈습니다.

슈피겔만도 압니다. 언제까지나 과거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어둔 과거를 벗어버리고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런 슈피겔만의 몸부림을 훔쳐본 나는 ‘어찌 저들을 용서할 수 있으며, 어찌 그 상처를 다 치유할 수 있을까’하여 심장이 저려왔습니다. 용서하기에 상처는 너무나 컸고, 이제는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이 든 늙은 사람들만이 남았습니다.

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 지구상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인간만큼의 이기심과 탐욕과 무지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치유하고 다독이며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입니다. 그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니까요.

동국역경원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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