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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見處 읊은 깨달음의 노래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8.06.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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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문학박사 특별기고]
공초문학상 수상작 오현 스님 ‘아지랑이’ 평론

오현 스님의 시는 불교의 심오한 사색과 깨달음의 세계를 일상적인 평이한 시어로 쉽고 감동적으로 읊고 있다.

지난해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인 ‘아득한 성자’가 하루살이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준 시라면, 이번 공초 문학상 수상작인 ‘아지랑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인 아지랑이를 좇아 헤매는 부질없고 어리석은 인생을 읊은 철리시이다.
먼저 ‘아지랑이’의 시 전문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음미해 보자.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 공(空)사상이다. 선사(禪師)들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인식 작용의 주체가 되는 내 마음을 깨닫는 것이요, 현상세계의 사물들이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마는 고유한 실체가 없는 공의 세계임을 깨닫는 것이다.
『금강경』에 “일체의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그림자 같네.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아라.” 하여 공사상을 여섯 가지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인생은 구름 같고, 아침 이슬 같고, 꿈과 같다. 실체가 없는 허상을 붙들고 발부둥치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 깨닫고 보면 인생은 별 것이 아니다.

‘아지랑이’는 오도(悟道)의 세계인 공의 세계를 아지랑이란 시어를 통해 멋지게 시화하였다. 필자는 ‘아지랑이’를 구도자가 투철한 수행과 깨달음으로 얻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실상을 인식하고, 인생에 대한 관조와 견처(見處)를 읊은 깨달음의 노래(오도송)라고 보고 싶다.

1연 1행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의 시구는 백 척의 긴 장대 끝에서 한 발을 내딛느냐 마느냐 생사를 걸고 구도 일념으로 임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읊고 있다.
2연 1행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의 시구에서는 드디어 백척간두에서 한 보를 내딛는 충천 대장부의 기개를 보이고 있다.

이 시를 살려내는 시어가 ‘낭떠러지’와 ‘절벽’인데 시어가 신선하고 긴장감을 준다. 칡넝쿨을 생명줄 삼아 우물 속에 매달려 있는 나그네에게 밤낮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번갈아가면서 갉아먹고 있는 현실은 낭떠러지나 절벽처럼 위태롭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삶이 우리의 인생이다. 수행자의 마음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한다.

3행 ‘우습다’는 깨달음의 겸손한 표현이다. 인생을 깨닫고 보니 내가 그 동안 실체가 없는 아지랑이를 붙들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이 우습다. 깨닫고 보니 세상은 허망한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 죽음을 등에 지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의 인생, 덧없는 재물과 미인, 명예를 아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지랑이 인생이요, 허공에 핀 꽃을 찾는 허망한 인생이다.

오현 스님의 ‘아지랑이’는 불교의 오도송이나 선시가 전통적으로 한시 형식을 취하여 왔는데 혁명적으로 한글시로 읊은 점과 난해한 불교용어를 배제하고 일상적인 시어를 선택하여 일반 대중의 곁으로 가깝게 다가간 점이 훌륭하다. 심사평에서 “한국문학사에서 최초로 시조시형에 선시를 도입한 선구자”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현 스님은 만해 곁에 서면 만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춰지고, 공초 곁에 서면 가장 가깝게 공초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김형중 (문학박사)

김형중 문학박사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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