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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겁탁(劫濁)의 세계

기자명 법보신문

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은퇴한 대학에 들렸더니 도서관 앞에서 학생들이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 지역과 중국 쓰촨성 지진 난민들을 돕자는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시작된 촛불시위가 현 정부의 퇴진운동으로 확대되어 온 나라가 어수선한 시절에 그들의 선행이 아름답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구상의 어떤 곳이든 재난이 발생할 때 전 인류가 국적이나 정치적 고려를 떠나서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에 나서는 것은 참으로 가슴 흐뭇한 보살행이 아닐 수 없다.

싸이클론은 적도 부근의 바다에서 발생한 강력한 열대저기압으로 북상하여 육지에 상륙하면 그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열과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소멸한다. 그 과정에서 연안지역에 강풍, 폭우, 홍수 등을 수반한 기상재난을 초래한다. 지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견고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허약함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에 제창되어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에 일대 혁명을 불러온 판구조론(Plate Tectonics)에 의하면 지구의 표면은 두께 100km 정도의 대략 열두어 개의 암판(岩板, Plat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판들이 그 하부 맨틀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대류현상에 의하여 수평운동을 하며 인접한 판에 막대한 응력을 작용한다. 이 응력에 의하여 주로 판 경계에서, 그리고 그에 비해 빈도는 낮지만 판 내부의 단층대에서도 지층이 깨어지며 지진들이 발생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한다. 그 첫째가 겁탁(劫濁)으로 온 세상에 자연재해와 질병, 전쟁 등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됨을 뜻한다. 지진과 태풍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각종 기상재해가 겁탁의 세상에 나타나는 자연재해들이다.
그럼 언제 이런 자연재해들이 사라질 것인가? 싸이클론의 경우는 그 에너지의 공급원이 되는 태양열과 지구상의 물이 소멸해야한다. 다시 말해서 태양이 식어버리고 바다의 물이 말라버려야 한다. 참으로 요원한 시간이 지난 후가 될 것이다. 지진의 경우에는 지구내부가 식어서 맨틀에서 대류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지구내부의 열은 주로 방사성물질로부터 방출되는 방사선이 지구물질과 충돌할 때 발생한다. 지구내부의 방사선물질의 분포를 알 수 없음으로 지구가 언제 식어버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요원한 시간이 지난 후가 되리라. 어쩌면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들은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 후에야 그치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왜 겁탁의 세계가 전개되는가? 우리 인류가 전세에 함께 지은 악업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 공업의 죄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가 자연재해를 면할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악업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겁탁의 지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겁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인류에게 주어진 참으로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오탁악세에 대비되는 청정한 세계가 정토이다. 즉 우리가 오탁악세를 벗어나려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정토행을 닦아야 한다. 어쩌면 불교의 모든 수행이 결국 정토행에 귀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선도 주력도 간경도 염불도 모두 정토로 가는 수행이다. 각자의 근기에 따라 적합한 수행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럼 정토의 모습은 어떠할까? 기왕이면 우리가 그 모습을 알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미타경』은 우리에게 서방극락정토의 청정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정토로 가는 수행으로 지극히 간단한 염불을 가르친다. 우리가 가려는 정토의 정경을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그곳에 왕생하려는 간절한 원으로 염불할 때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기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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