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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24. 진정한 승리

기자명 법보신문

연기법 속에서 자기를 이길때 두려움 사라져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 『법구경』

『논어』안연편(顔淵編)에 안연이 ‘어짐(仁)’에 대하여 공자에게 질문하니,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이 된다”고 대답하였다. 곧 “자기를 누르고 예(禮)로 돌아감이 인이 되는 것이니, 단 하루라도 극기복예하면 천하의 모두가 어짐을 회복할 것이며, 이는 각자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일로서 남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다. 『논어』는 언제 읽어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고전이다.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하라

이 『논어』의 극기복례에 대응되는 말씀이 바로『법구경』103번 게송일 것이다. 이 게송을 설하게 된 배경에는 꾼달라께시 비구니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꾼달라께시는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려다가 도리어 남편을 죽이게 되고, 그 충격으로 방황하던 끝에 여성 수행자가 되었다. 여성 수행자로서 지혜를 연마한 다음에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능가한 도전자를 찾아서 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사리불 존자를 만나서 지식을 겨루면서 1천 가지의 질문을 사리불에게 던진다. 이를 다 대답한 사리불 존자는 그녀에게 단 한 가지 “하나는 무엇인가?”라는 매우 간결한 질문을 던졌으나 그녀는 여기에 답을 하지 못했다. 아주 단순한 이 ‘하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그녀는 일순간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듯 하였으나, 그 순간 마음이 참으로 고요해졌고 모든 번잡함을 다 쉬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들떠 있던 자신을 극복하고 곧 바로 아라한과를 성취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신 부처님께서 모든 시끄러움을 그치고 열반을 증득하게 하는 단 한마디의 참다운 말씀과 다른 누구와의 싸움도 아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승리가 가장 값진 것이라는 게송을 설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이후 꾼달라께시는 불교교단에 귀의하고 비구니가 되었다.
『논어』에서는 인(仁)의 의미를 자기를 이기고 예(禮)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인(仁)과 예(禮)는 인륜도덕(人倫道德)을 지켜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

 여기에서의 자기는 인륜으로 엮어진 자기가 아니라 철저하게 홀로 서있는 자기를 의미한다. 홀로 서있는 자기는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오직 자신만이 홀로 서있기 때문에 유아독존(唯我獨尊)으로서의 초탈함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자기도취와 극단적인 자만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떠한 방면에서 바라보던 이러한 독존(獨尊)적인 자기를 철저하게 모두와의 관계 속에서 볼 때, 불교는 비로소 자기를 극복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하게 가르치셨던 연기법(緣起法)으로 사물을 보는 자세인 것이다. 건강한 자기는 병든 자신과 연관해서 바라보고, 현재 젊고 발랄한 자신은 곧 늙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깨우침이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모든 생명이 누구도 빠짐없이 삶이라는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자기에게만 주어진 고립(孤立)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동거하고 공생한다고 하는 연기법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봄으로서 절대 평등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이 때 불교에서는 비로소 ‘자기를 이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독존적 자아 극복해야

이렇게 자기를 이긴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더 이상 괴롭지 않다. 더 이상 슬프지 않고 더 이상 자만하지 않는다. 참으로 고요하고 참으로 편안하며 참으로 즐겁고 참으로 비어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깨끗하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외적인 어떠한 장애나 괴로움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이나 장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면의 세계에서 절대 평등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미 고통과 장애조차도 진리로서 있을 뿐이다. 비로소 ‘오온(五蘊)이 다 공(空)함을 깨닫고 일체의 고액(苦厄)을 뛰어넘은 『반야심경』속의 관자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 이르러서는 하나와 천(千)의 대결도, 너와 나의 대결도 안과 밖의 대결도, 고통과 기쁨의 대결도, 탄생과 사멸의 대결도 이미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것을 이기고 뛰어넘어서 참으로 고요하고 참으로 여여(如如)하며 참으로 평등한 초탈(超脫)의 경지가 있을 뿐이다.

도덕을 실천하고 인륜을 지켜서 어진 심성을 회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불교의 자기를 극복함은 생로병사와 우비고뇌(生老病死 憂悲苦惱)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담담한 모습으로 삶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위 게송의 자기를 이긴 삶이다. 모두가 괴로움의 한 가운데서 괴로움을 벗어난 자기를 다시 만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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