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상식 밖에서 사는 현구 스님

폭설 속 약속 취소도 않고
날 고생케 했던 도반 보며
모두가 나와 같지 않음을
깨우치는 참회 계기 삼아

갑자기 생각이 났다. 칼럼의 제목이 ‘성원 스님의 기억에 남은 스님’인데 꼭 모범적인 스님과 좋은 일만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스님은 꼭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인 스님만은 아닌 것 같다. 드러내면 해당스님께 누가 될까 염려도 되지만 사심 없이 느끼는 감정이고 추억이니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한번은 철원 심원사를 참배하기 위해 먼 길을 운전해야 했을 때가 있었다. 평소 엉뚱하지만 더없이 친한 도반 현구 스님이랑 동행하였다. 당시에 신라시대 철불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장흥 보림사 부처님을 막 참배하고 온 후라서 피로가 겹쳤다. 해인사에서 출발하여 장흥을 거처 심원사로 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잠시 현구 스님에게 운전을 맡겼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곧잘 운전을 했다. 도피안사 가까운 지역에 군인들이 많았고 검문이 잦았다. 몇 번 검문은 그냥 통과했는데 마지막쯤일까 군경이 함께 근무하면서 면허증을 요구했다. 뭐 큰 과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앉아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도 해결되지 않아 내려 가봤다. 스님이 면허증이 없다는 것이다. 원동기면허증 뿐이라고 했다. 원동기면허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한참을 사정하자 경찰도 원동기면허만 가지고 차운전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너무 어이가 없어 그냥 보내주었다. 물론 그때부터 돌아갈 때까지 운전대를 놓을 수 없었고 너무나 힘든 여정이 되고 말았다. 당시 스님은 애당초 면허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몇 차례 검문소를 지나는 동안 어쩌면 그토록 당당하게 운전했는지 정말 너무나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언젠가 겨울이었다. 현구 스님이 주지로 있는 영동 중화사에 스님들을 초대하였다. 몇 번 망설이다가 여러 스님들이 온다고 해서 얼굴도 볼 겸해서 올라갔다. 마침 때늦은 폭설이 내려 몇 차례 전화를 했다. 눈이 왔는데 차량통행이 가능한지, 모두 모였는지…. 통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올라오라고 했다. 산 아래 마을부터 눈이 20cm는 넘을 것 같았는데 제설작업을 마쳤나 생각했는데 정말 산길은 말이 아니었다. 몇 차례 후진과 전진을 거듭하면서 위험한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결국 차를 포기하고 도보로 산사에 도착했다. 잔뜩 늦은 마음에 대중들께 뭐라고 말을 할까 고민하며 조바심을 내어 들어섰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현장 앞에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은 현구 스님외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사전에 취소됐다는 걸 알려 줬으면 눈밭에서 언 손으로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현구 스님의 한마디 앞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 왔어. 아무도 안온다고 했는데 니들이라도 온다고 해서 기다렸어. 다 그런 거지 뭐” 하면서 히죽 웃고 마는 것이 아닌가! 행사가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최소한 24시간 전에는 알았으면서도 고생고생 올라온 우리들 앞에서 어쩌면 저토록 태연할 수 있는지 정말 화도 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이 나 같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나는가보다. 이제는 현구 스님에 대한 기대를 버릴 때도 되었는데 그렇지 못하다. 전생에 얼마나 스님을 골탕 먹였으면 번번이 힘들고 놀라게 되는 걸까?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한둘이 아닌 덕에 현구 스님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스님으로 남아있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부주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