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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교육법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 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요즈음 대학의 강의실은 빔프로젝트와 비디오, 텔레비전 등 최첨단 시설로 되어 있다. 학생들에게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시청각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다보니 이러한 시설은 기본에 속할 정도다. 그리고 책상이나 의자도 인체공학에 맞추어져 있으며 냉 ·난방시설로 많이 쾌적해졌다. 흑판에 분필로 판서를 하던 것이 이제는 매직펜으로 대신하고 파워포인트와 컴퓨터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 시설로 강의를 마치고 나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감상한 것처럼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다. 또한 시청각교육을 위해 첨단장비를 사용하려면 강의실이 밝은 것보다는 어두워야 잘 보인다. 그 어두움의 분위기는 ‘졸기’에 안성맞춤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보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였다.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다가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어 주고 노트를 일일이 체크하며 동그라미로 점수를 메겨주던 일이 생각났다. 그 때 선생님의 동그라미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노력하였고, 보기 좋게 정리하여 칭찬을 받기 위해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났다. 대학의 수업에서 이 방법을 적용하면 어떠할까? 과연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수업에서 노트검사를 하기로 하였다.

첫 수업이 시작될 때 학기 중에 반드시 노트를 검사하여 성적에 반영한다고 이야기 하면 학생들은 웃는다. 마치 우리를 초등학생 취급을 하느냐는 식의 반응이다. 그리고 명색이 대학에서 전자불전 문화재콘텐츠연구소장을 맡아 불전의 전산화에 앞장을 서고 있는 사람이 아날로그시대의 노트검사라니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학기말을 앞두고 노트 검사를 해보니 학생들의 수업태도와 성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요즈음은 리포트를 내어 주면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오기 때문에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중간고사나 기말시험은 선배들로부터 시험문제의 족보를 물려받아 족집게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만다. 그러므로 참으로 수업을 진지하게 받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노트검사를 해보니 확연히 구분된다. 어떤 학생은 교수의 강의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도 주로 달아 두었으며, 여러 가지 색깔의 펜을 사용하여 일목요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대충 대충해 두었으며,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한 학생의 레포트와 시험지를 살펴보면 그 내용도 엉망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함양된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도 논리적으로 정리 할 수 없다. 우리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기억에 오래 남지 않으며, 나의 것이 되기가 쉽지 않다. 손으로 직접 정리하고 쓰면서 촉각으로 느끼는 것이 더 깊이 각인되는 것 같다.

우리의 육근(六根) 가운데 눈으로 보는 안근(眼根)이나 귀로 듣는 이근(耳根)만으로는 기억이 쉽지 않다. 여기에 몸으로 직접 느끼는 신근(身根)이 함께하였을 때 그 기억은 오래 남는 것 같다. 공부를 할 때 육근(六根)을 총 동원하여 육식(六識)을 집중하여야 정신이 하나로 통일 된다. 이러한 경지를 일심(一心)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자들이 법회에 참석하여 법사스님의 법문을 그냥 귀로만 듣지 말고 법문노트를 준비하여 하나하나 받아 적어 두게 되면 두고두고 볼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될 것이다.

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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